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조주빈 선고 이후] 인격살해 디지털 성범죄, 중형이 '뉴노멀' 된다

알림

[조주빈 선고 이후] 인격살해 디지털 성범죄, 중형이 '뉴노멀' 된다

입력
2020.12.08 04:30
수정
2020.12.09 14:30
10면
0 0

피해자 변호인·단체 평가 들어보니
"징역 40년 선고... 의미 가볍지 않아"
"'경미한 범죄' 인식 바꾸는 계기 되길"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조주빈 등 6명의 1심 선고가 열렸던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eNd(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회원들이 박사방 일당에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조주빈 등 6명의 1심 선고가 열렸던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eNd(n번방 성착취 강력처벌 촉구시위)’ 회원들이 박사방 일당에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9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기존 판결보다 형량을 크게 높일 수 있도록 한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안을 내놓았다. n번방, 박사방 사건이 일으킨 사회적 파장을 고려한 조치였다. 이어진 '박사방' 일당의 1심 재판. 법원은 지난달 아동·청소년을 포함, 총 74명의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판매한 그들에게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정한 첫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이 양형의 큰 방향을 만들고 일선법원이 실제 디지털 성범죄를 엄단하는 판결을 내놓은 것이다. 이제 ‘호기심에 잠깐 그럴 수도 있는’ 범죄로 치부하던 기존의 인식들이 확 달라질 수 있을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 이현우)는 지난달 26일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유기징역 상한은 30년이고, 형을 가중할 때만 50년까지 선고하도록 한 형사소송법 규정에 비춰보면 상당한 중형이다. 함께 기소된 공범들도 모두 징역 7~15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주목할 부분은 박사방이 ‘범죄집단’으로 인정되면서 공범들 형량까지 크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특히 이모(16·대화방 닉네임 '태평양')군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유포하기만 했지만, 박사방 일원이라는 이유로 형이 더 높은 '제작 혐의'가 적용됐다. 그 결과 이군에겐 소년범 법정 최고형인 장기 10년, 장기 5년이 선고됐다. 유료회원 장모씨와 임모씨도 성착취물 내용을 제안했지만, 역시 형량이 높은 제작 혐의로 각각 징역 7년과 8년을 선고 받았다.

"종전엔 없었던 높은 형량... 성착취물 범죄에 경종"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25)이 지난달 26일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 받았다. 첫 재판이 열린 지 약 7개월 만이다. 사진은 조주빈이 지난 3월 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텔레그램 '박사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25)이 지난달 26일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 받았다. 첫 재판이 열린 지 약 7개월 만이다. 사진은 조주빈이 지난 3월 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법조계와 여성계에서는 박사방 1심이 기존 사건들과 달리 상당히 높은 형을 선고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는 평가가 많다. 예를 들어 박사방의 전신 ‘n번방’의 운영을 물려받은 신모(32·켈리)씨만 보더라도, 성착취물 소지·판매 혐의로 지난해 11월 1심에서 '겨우' 징역 1년을 선고 받는데 그쳤다. 신씨는 ‘공범 수사에 도움이 됐다’는 이유로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2심에서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일선 법원의 판사는 “높은 형량으로 성착취물 제작·유포 범죄에 경고 메시지를 던진 점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박사방 피해자 지원 전담 변호사인 신진희 변호사는 "신종 성착취물 재판들 중 조주빈 선고가 먼저 스타트를 끊었고, 형량도 가장 세다고 할 수 있어 전국 각지에 흩어진 유사사건들 재판에서 기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조주빈은 아동·청소년 강간 지시 등 죄질이 나쁜 범죄를 다수 저질렀고 공범들도 범죄단체 혐의가 적용돼 형량이 높게 나왔다"는 의견도 있다.

피해자 중에는 무기징역을 기대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피해자 변호를 맡았던 오선희 변호사는 "피해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무기징역을 바랐다"고 말했다. ‘방청연대’를 이끈 연대자D도 “조주빈이 지나치게 악마화된 탓에 다른 성범죄자들이 ‘당연하게’ 그보다 낮은 형량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며 "다른 재판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상징적으로라도 무기징역을 선고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유사 범죄를 저질러 기소된 배준환은 3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온라인에서 조주빈보다 피해자를 특정하지 않으려고 배려했다”며 조주빈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선처를 구했다.

'n번방부터 박사방까지' 디지털 성범죄 1심 결과. 그래픽=박구원 기자

'n번방부터 박사방까지' 디지털 성범죄 1심 결과. 그래픽=박구원 기자


호기심에 그럴 수 있다?... 인식 바뀌는 계기 되길

디지털 성범죄의 형량을 높이는 'n번방 방지법'을 논의할 당시, 일부 국회의원들이 '경미한 범죄'라는 취지의 말을 내뱉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3월 5일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장면. 연합뉴스

디지털 성범죄의 형량을 높이는 'n번방 방지법'을 논의할 당시, 일부 국회의원들이 '경미한 범죄'라는 취지의 말을 내뱉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3월 5일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장면.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피해 회복'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판결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법원이 '디지털 성범죄는 온전한 피해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속성을 인식한 이상, 추후 다른 사건들에서도 중형이 선고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재판부는 △홍보를 명분으로 성착취물을 반복 유포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계속 발생하는 구조를 만든 점 △신상을 공개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힌 점 △일부 범행을 인정하지 않아 몇몇 피해자들을 법정에 나오게 한 점 등을 양형 가중 요소로 언급한 바 있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주빈에게 일반적인 살인죄(징역 15년)보다 높은 형을 선고한 것은 법원이 '사회적 인격이 살해되는' 피해 양상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박사방은 단체 채팅방에서 성착취 사진이나 영상을 공유하던 ‘남성의 집단 놀이문화’가 기형적으로 발전한 것인데, 저들이 단죄 받는 모습을 보며 놀이문화 참여자들이 자신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제2, 제3의 박사방도 엄벌하려면 지속적 관심 필요"

김영란 양형위원장이 지난 4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중회의실에서 열린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범죄(청소년성보호법 제11조)의 양형기준을 논의했다. 연합뉴스

김영란 양형위원장이 지난 4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중회의실에서 열린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범죄(청소년성보호법 제11조)의 양형기준을 논의했다. 연합뉴스

9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제작범죄에 최대 징역 29년 3월을 선고할 수 있는 기준안을 제시했는데, 그대로 확정되면 디지털 성범죄의 형량을 높인 'n번방 방지법'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n번방 방지법은 지난 5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양형기준의 범위가 넓고 ‘권고’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이 덜한 다른 사건에서 또다시 경미한 처벌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관심 받지 못하는 사건에는 중형이 내려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박사방 사건도 2, 3심까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성착취물 제작·공유범죄에 범죄단체 혐의가 적용된 전례가 없어, 항소심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범죄단체로 인정되지 않으면 박사방 일당의 형량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윤주영 기자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