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 탄소중립’ 실현, 회의적 시각 많지만?
미ㆍEU 탄소 규제 등 수출에 임박한 위협?
탈탄소 전환 단축 위해 탄소세 도입 필요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2050 탄소중립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다분히 정치적 선언 아닐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에서 참석 장관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런 의심이 생길 정도로 어려운 과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그럼에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반어법’이라는 게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 첨언이다.
하지만 국내 ‘에너지 전문가’들 중에는 이 발언을 반어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 발언 얼마 후 한 국립대 에너지시스템 전공 교수는 언론에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본다면 선언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선언일 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 진짜로 계획하면 안 된다. 그대로 실행하면 큰일 날 거다”라고 문 대통령의 의지를 냉소했다.
경제 최전선에 있는 이들도 “큰일 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의미는 그 교수와 정반대다. 얼마 전 국회 ‘기후위기 그린뉴딜 연구회’ 주최 세미나에서 만난 SK SUPEX 추구협의회 SV위원회 이형희 위원장은 “SK가 RE100(기업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 그룹에 가입한 것은 거창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서다. SK하이닉스의 경우 반도체를 구매하는 큰손인 애플, 구글 등이 이미 RE100을 선언한 기업이라,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 납품을 못 한다”며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 증가 속도가 더딘 것을 답답해했다. 애플이 RE100을 실현하려면 아이폰에 들어가는 반도체도 재생에너지로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다 정부가 원자력발전소를 증설하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다. RE100은 당연히 원자력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는다.
RE100이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초일류 기업 중심의 자발적 규약이라면, 정부 주도의 더 강력한 환경 규제도 기다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탄소국경세를 도입한다. 탄소국경세는 탄소 과다배출국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다. 내년 출범할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도 EU와 유사한 탄소국경세를 2025년까지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EUㆍ미국이 요구하는 궁극적 기준은 탄소 발생량을 줄이는 정도로 충족할 수 없다. 제철을 예로 든다면 용광로 굴뚝에서 나오는 탄소 절감이 아니라, 용광로 연료를 석탄에서 수소로 바꿔야 하는 수준이다. 철강, 석유화학은 물론 자동차 조선 해운 섬유 등 우리나라 산업 전체가 벼랑 끝에 몰렸다. ‘2050 탄소중립’은 겉치레 ‘선언’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명령’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산업 체질 개선은 더디기만 하다. 올해 9월까지 우리나라 전체 전력 생산량 중 석탄발전의 비중은 36.8%로 여전히 압도적 1위다. 반면 재생에너지는 6.8%에 불과하다. 2050년 탄소중립 중간 목표인 2030년 탄소감축 목표 ‘2017년 발생량 대비 24.4% 감축’도 너무 소극적이다. 30년 뒤 목표만 강조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10년 뒤 목표는 낮춰 설정하는 정부 태도를 보며 고탄소 배출 기업들뿐 아니라, 환경단체들도 정부의 탄소중립 의지를 의심한다.
문 대통령은 탈탄소 신기술 발전 속도를 높이는 것이 고통을 최소화하고 탄소 중립으로 도약하는 길이라 강조한다. 하지만 신기술 발전만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기존 탄소배출 기술ㆍ제품의 가격을 제도적으로 높여 탈탄소 기술 정착을 앞당겨야 한다. 정부가 탄소세 도입 준비를 내년부터 본격화하기로 한 것은 이런 점에서 옳은 결정이다.
50년간 유지된 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에 저항이 없을 리 없다. 다양한 반대 진영을 설득해 탄소세 도입에 성공한다면 문재인 정부 최대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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