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백신 승인으로 전 세계의 관심은 백신 '개발'에서 '접종'으로 넘어갔다.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종식의 기대감이 커지는 한편 백신의 효능을 믿지 않거나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자 영국과 미국 지도자들이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백신을 공개적으로 맞겠다’고 나서고 있다.
오바마ㆍ부시도 ‘라이브 접종’ 예고
2일(현지시간) 미 CNN 방송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3일 송출 예정인 라디오채널 시리우스XM 인터뷰에서 “대중에게 내가 과학을 신뢰하고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TV에 출연해 접종하거나, 접종 장면을 촬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역시 국민들에게 백신 접종을 권고하기 위해 직접 맞고, 도움이 된다면 공개적인 환경에서 접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영국에서도 맷 핸콕 보건장관이 유명 방송인 피어스 모건과의 인터뷰에서 “실시간 방송으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 받겠다”고 밝혔다. 그는 “임상적으로 안전하지 않다면 규제 당국이 백신을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백신 접종을 독려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역시 ‘라이브 접종’ 가능성이 열려 있다. BBC 등에 따르면 영국 총리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존슨 총리가 TV방송에서 백신을 맞을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배제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답했다.
미국 흑인 14%만 “백신 안전”
이들 국가 정치인이 앞장서 홍보에 나서는 것은 여전히 백신을 불신하는 정서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통상 백신 개발엔 수년이 걸리지만, 이번 코로나19 백신은 1년도 안돼 개발이 완료되면서 안전성 우려가 적지 않다. 여기에 가짜뉴스와 제약회사에 대한 유색인종 등의 반감까지 겹치면서 대중의 불안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다르면 미국인 23%, 영국인 20%, 독일인 19%가 백신 접종 거부 의사를 각각 밝혔다. 또 다른 설문조사에선 그 비율이 더 크다. 갤럽이 10월 진행한 조사에서 미국 성인의 58%만 백신을 맞겠다고 응답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60~70%가 면역력을 갖추면 집단면역이 가능하다고 보는데, 막연한 불신은 접종을 꺼리게 만들어 팬데믹 종식 시계를 늦출 수 있다.
그러나 뿌리 깊은 불신을 타파하긴 쉽지 않다. 특히 인종 불평등을 경험한 계층과 소수자 일수록 백신을 믿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워싱턴포스트(WP)는 코로나 관련 연구기관인 ‘코로나 컬래버레이티브’의 설문조사를 인용, “미국 흑인의 14%, 라틴계의 34%만이 백신이 안전하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전염병 대응의 사회학을 연구하는 알렉산드르 화이트 교수는 WP에 “소수자들의 (백신 접종) 망설임은 역사적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의식한 듯 오바마 대통령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터스키기 매독 생체 실험’을 언급하며,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가 (백신 접종에) 왜 회의적인지 이해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그는 “백신은 우리가 더 이상 소아마비에 걸리지 않고, 홍역 천연두로 아이들이 사망하지 않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터스키기 실험은 1930~1970년대 미국 보건당국이 매독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흑인 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악명 높은 생체실험이다.
‘백신을 맞으면 DNA 구조가 바뀐다’거나 ‘백신에 태아의 세포가 들어있다’는 등의 가짜 뉴스 역시 불안감을 부추긴다. 프란체스코 로카 국제적십자연맹(IFRC) 총재는 유엔 기자협회 화상 브리핑에서 “세계적 대유행을 이기기 위해 불신의 대유행도 이겨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민간까지 팔을 걷어붙였다. 미국 비영리단체인 미국광고협의회는 내년부터 TV, 출판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백신 접종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시작하고, 이를 위해 5,000만 달러(약 555억원)를 투입하기로 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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