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법 개정은 명백한 개악입니다. 민간인 사찰을 제도화하는 '전 국민 사찰법'입니다."
지난 2일 오후 11시15분, 국회 본회의 마지막 '5분 발언' 주자로 나선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 발언에 의원들이 웅성거렸다. 조 의원은 "(정보원 직무 범위에) 경제 질서 교란에 관한 정보 수집을 새로 끼워넣었는데, 그 대상과 범위가 아주 모호하다"며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독소 조항"이라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국정원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야유했지만, 조 의원의 '이유 있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외교관 출신인 조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와 정보위 소속이다.
'민간인 사찰' 막는다며 정보수집 합법화?
민주당이 오는 9일 본회의 처리를 예고한 국정원법 개정안은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 활동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방첩 활동 범위(4조 1항)에 '경제 질서 교란'을 추가해 국정원 직무 범위가 오히려 넓어졌다는 게 조 의원의 문제 제기다. 조 의원은 5분 발언에서 "주가 조작을 조사한다는 이유로 국민의 개인정보를 캐고, 기업인이나 공적기금에 대한 민감한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다"며 "없어져야 할 민간인 사찰로 이어질 위험이 너무나도 크다"고 지적했다.
수사권을 이관한 국정원이 '조사권'을 갖는 것도 문제다. 개정안(5조)은 직무수행과 관련해 필요한 경우 국가기관이나 관계기관 등에 사실 조회 확인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국정원장에게 줬다. 조사권 남용이 우려되는 지점이다. 조 의원은 "국정원이 요구하면 요청에 따르도록 강제했기 때문에 모든 정보가 국정원에 고스란히 쌓이게 된다"며 "나아가 국정원이 '현장 조사, 문서 열람, 시료 채취, 자료 제출 요구, 진술 요청'을 할 수 있도록 새로 규정했는데, 이게 사찰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일갈했다.
與 "문제 없다" vs시민사회 "사찰 우려"
여당과 국정원은 '민간인 사찰 우려는 과도하다'고 반박한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발생한 경제 질서 교란 사건에 대해서만 방첩 활동을 허용해 국내 사찰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논리를 들었다. 산업스파이의 해외 기술 유출 사건 등에 한정해 정보를 수집하겠다는 뜻이다. 조사권도 영장 청구 등의 '정상적 절차'를 통해 이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사회에서도 국정원법 개정안에 민간인 사찰 위험 요소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보 수집 활동을 넘어선 공작 활동이 합법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 개혁위원회에서 활동한 장유식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실행위원은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애초 국정원 개혁을 위해 국내 정보 수집 업무 전면 폐지를 내걸었고, 직무 범위를 넓히면 권한 남용이 우려된다며 반대했는데 입장이 바뀐 것"이라며 "오히려 보수 야당이 민간인 사찰을 우려하며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됐다"고 꼬집었다.
막말 없이 국정원법 허점 찌른 '5분 연설'
조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당선된 8개월차 국회의원이다. 외교부 제1차관과 국가안보실 제1차장을 지낸 외교안보 전문가다.
조 의원의 '5분 연설' 데뷔 무대를 두고 국민의힘에선 '윤희숙 의원의 '나는 임차인입니다' 연설 장면과 닮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막말이나 고성 한 마디 없이 전문성을 살려 법안의 핵심 문제점만 지적했기 때문이다. 진영간 시각이 명확하게 갈리는 외교안보 이슈에 대한 논의는 감정적 논쟁으로 끝나는 게 보통이었다. 조 의원실 관계자는 "민간인 사찰 우려는 국민 생활과 직결돼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 국민의힘의 국회 의석수가 열세이다 보니 법안 심사과정에서 속수무책이었다"며 "5분 연설에선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문제만 전달하려 했다"고 말했다.
조 의원도 3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활동을 해 보니 정보기관에 대한 감시가 정말 어렵다는 걸 체감한다"며 "국정원에 대한 감독·감시 기능이 미비한 상황에서 입법이 강행되고 있다"고 거듭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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