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걸리는 개발기간 1년으로 단축?
유효성·안전성 입증할 자료 불충분
실패 가능성 있는데도 구매할 수밖에?
제조사들 이미 책임 회피 출구 전략?
계약 후 심사 중 안전성 문제되면 난감
영국이 지난 2일 다국적제약사 화이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사용을 처음 승인함에 따라 각국의 접종 준비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화이자와 미국 바이오기업 모더나가 이미 미국과 유럽에 승인을 신청한 만큼 미국에선 이달 말, 유럽에선 내년 초 접종이 시작될 거란 전망이다.
이에 따라 우리 보건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의 ‘안전성’에 방점을 두고 도입에 신중을 유지해오고 있지만, 사실 이를 입증할 만한 과학적 근거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더 나은 근거가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민들의 피해가 이미 막심하니 일단 구매는 해야 한다. 국내 기업들의 백신 개발 속도가 외국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자칫 백신을 ‘무기’로 쥔 대형 해외 제조사들에게 끌려 다닐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접종 시기나 규모를 선진국보다 크게 뒤처지지 않게 하면서 예산 낭비와 부작용 우려도 최소화하기 위해선 도입 과정에서 핵심 자료를 얼마나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4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현재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해외 제약사들은 관련 기술이나 임상시험 자료, 제조 공정 등의 핵심 정보를 극히 제한적으로 내놓고 있다. 판매 허가를 신청하기 전 학술대회나 학술지를 통해 이 같은 정보를 여러 차례 발표하며 전문가들 의견을 듣는 통상적인 신약 개발 절차를 따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제약사는 신약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임상시험 데이터도 공식 연구논문이 아닌 언론 보도자료 같은 간소화한 형태로 일방적으로 발표해왔다.
국내 한 백신 제조사 관계자는 “임상시험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효능을 더 좋게도, 부작용을 더 적게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더구나 현재 개발 속도가 앞선 코로나19 백신 후보들에는 대부분 지금까지 상용화한 적이 없는 원리가 적용됐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존슨앤존슨은 아데노바이러스를 변형해 백신 제조에 사용하는데, 이를 백신으로 장기 사용했을 때의 안전성은 확실히 입증된 적이 없다. 화이자와 모더나가 만드는 유전자(RNA) 백신은 성분의 특성상 시간이 지날수록 효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한계가 백신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려면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투여해 오랫동안 경과를 지켜보는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다수의 전문가들에게 공개해 오류를 찾아내고 개선하는 과정을 수차례 거쳐야 한다. 새로운 백신 개발이 대개 수~십수년 걸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접종을 눈앞에 둔 해외 제약사들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기간은 1년도 채 안 된다. 때문에 여러 나라가 긴급하게 승인한 백신이라도 향후 효능이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생기는 등의 이유로 실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위험성을 잘 아는 제약사들은 실제 접종이 개시된 이후 나타날 지 모르는 부작용에 대해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출구’ 확보에 이미 나서고 있다. 이상원 중앙방역대책본부 역학조사분석단장은 지난 3일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코로나19 백신 개발사들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모든 국가에 공통적으로 면책 요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에 따른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선 백신 접종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보건당국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임상시험 최종 결과를 모른 채 선입금을 통해 일단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나중에 실패할 가능성까지 가정하고 다양한 플랫폼(작용 원리)의 백신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패할 가능성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낮은 백신이 뭔지를 판단해 상대적으로 많은 수량을 들여오는 식의 묘수가 필요하다.
제조사들과 계약을 맺고 백신을 확보한다 해도 난관은 여전히 남는다. 보건당국은 접종을 시작하기 전 심사를 통해 유효성과 안전성을 다시 확인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른 의약품처럼 정식 허가 절차를 밟으려면 6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를 한두 달 내로 대폭 줄이는 신속심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선 백신 제조사가 정식 허가를 신청하기 전부터 임상시험 자료를 미리 확보해 검토에 들어가야 한다. 신속심사에도 제조사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심사 중 유효성이나 안전성이 미비한 부분을 찾아낼 경우 상황은 복잡해질 수 있다. 다량 계약한 백신을 허가도 내주지 않고 폐기한다면 많은 예산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심사를 마치고 접종을 개시하더라도 부작용을 우려해 백신 맞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원 방대본 단장은 “현재로선 접종 받지 않겠다는 인원까지 고려해 수량을 정하고 있진 않다”며 “국민들이 충분히 접종받을 수 있도록 확보하겠다는 기본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은 개별 백신 제조사들과 협상이 완료되는 대로 빠르면 다음주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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