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다. 예비고사에서 시작해서 학력고사로 이어진 대입 표준 국가 주도 시험이다. 이름이 다른 것은 당시 입시정책의 기조가 반영된 셈이다. 예비고사는 본고사를 보기 전에 기초(?) 실력을 가려본다는 뜻이고, 학력고사는 문자 그대로 '이 점수가 곧 학력이고 대학이다'는 엄포였다. 수능은 미국식 취지를 가져온 셈인데, 대학에 가서 공부할 자격이 되는지 측정해 본다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시험이 그런 요란한 의도와는 관계없이 대학을 결정하는 점수와 서열 매기기의 시작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러니, 당락 결정 시험도 아닌데 수능 치는 수험생에게 엿을 선물한다. 수능에는 합격 불합격이 없는데도 '합격 기원'이다.
나는 학력고사 세대였다. 돈이 없어 입시를 포기하거나, 실업계를 나와서 취직하려는 친구들은 시험을 안 치렀다. 인구 폭발 세대였지만 응시율은 아마도 70%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도 70만명이 넘었다. 수능과 학력고사는 별 차이가 없다. 문제가 길어지고 어려워지긴 했지만, '정상적 학교 수업을 받는 학생은 무리없이 풀 수 있는 수준'으로 나온다고들 한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실업 과목이 없어졌다는 점이다. 아마도 '직업 탐구'과목이 이를 대체하는 듯하다. 우리 시절에는 가사며 공업, 상업을 배웠다. 흥미로운 건 수산업, 광업, 농업 같은 과목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가사, 공업, 상업이 지역 특성에 관계없이 각 학교에서 선택하는 게 대세였다. 광업지대나 농어촌 지역 학교에서도 광업과 수산업, 농업 같은 '사양 과목'은 가르치지 않으려 했다.
나는 고3이 되어 학력고사를 볼 때 학교지정 과목인 상업 대신 농업을 선택했었다. '쌀나무'가 있다고 해도 믿을 서울내기가 농업을 선택한 큰 도박이었다. 독서실 옆자리 재수생 형이 보던 농업 교과서가 너무도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차변 대변과 재무관리 대신 양계법과 돼지치기, 과일 나무 기르기 같은 게 훨씬 재미있을 수밖에. 물론 원서 써주시던 담임선생님은 황당해하셨지만. 시험 당일 서울시에서 농업을 선택한 유일한 현역인 나는 농촌 출신 재수생, 삼수생들과 아현동의 자그마한 직업학교에서 학력고사를 치렀다. 문제지 공급 등의 사유로 같은 실업 선택 과목을 고른 수험생만 모으다 보니 서울 전체 농업 응시자들을 싹 긁어모아도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게 왜 뒤늦게 요리사가 되었는지 묻는다. 정확히 대답하자면, 그때 농업 과목을 배운 덕분이었다.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으니, 청계천에서 구한 헌 교과서로 공부한 농업 말이다. 사람 입에 들어가는 작물은 어떻게 기르는지, 통닭이 되려면 닭이 얼마나 자라야 하는지 따위가 인생에 큰 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작물을 알게 되니까 달리 보이고, 그걸 요리하는 구체성을 알고 싶었다.
새벽 배송과 로켓 배송으로 농작물을 받아먹고, 완전히 요리된 음식이 손가락 타자 몇 번으로 집에 당도하는 시대에 오히려 우리는 보리는 왜 밟아 주어야 잘 자라는지, 배추꽃이 언제 피는지를 배워서 뭣에 쓸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먹을 수 있는 세상 만물을 기르고 잡고 키우는 농축수산업을 가르치고 배우는 건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열어 준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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