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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스 갬빗, 내면의 싸움

입력
2020.12.01 18:00
26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 넷플릭스 제공


천재 체스 소녀의 성장을 그린 미국 드라마 '퀸스 갬빗'(The Queen's Gambit)이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고 있다. 10월 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 드라마는 4주 만에 6,200만 계정의 시청자 수를 기록해 넷플릭스 역대 미니 시리즈 최고치를 경신했다. 체스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어 때아닌 체스 배우기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7부작 드라마는 고아원에서 자란 베스 하먼이 불우한 환경을 딛고 남성들이 지배하는 체스판에서 그랜드마스터가 되는 여정을 그린다. 월터 테비스의 1983년작 소설을 원작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지만 체스계의 실제 에피소드와 미소 냉전, 인종차별 등 당대 시대상을 적절하게 버무려 감동적인 실화라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인상적인 것은 이 드라마에 악인다운 악인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데도, 체스판 위의 승부가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는 점이다. 주인공 베스의 최종 적수가 소련의 체스 챔피언으로서 미소 체제 대결을 반영하는 듯하지만 드라마는 그런 냉전 시대의 진부한 선악 대결을 비켜간다. 베스가 소련 챔피언을 꺾은 걸 홍보하려는 백악관의 초청을 뒤로하고 길거리에서 평범한 소련 노인들과 체스를 두는 걸로 드라마는 끝을 맺는다. 드라마의 핵심 갈등은 다름 아닌 주인공 내면의 싸움이다. 가난한 베스에게 체스는 유일한 탈출구였으나, 승리를 위해 약물과 알코올에 중독되면서 자신만의 세계에 더욱 갇히게 만드는 뫼비우스의 늪이었다. 베스는 그러나 생의 바닥에서 우정을 깨닫고 중독에서 벗어난다. 체스는 종내 경계를 넘는 소통을 상징하게 된다.

□이 드라마에 대한 공감이 큰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그만큼 선악대결식 싸움에만 골몰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냉전은 그 옛날 해체됐지만 그 시대의 이분법은 정치적 선동 속에서 더욱 강화됐다. 진영 갈등은 총칼 없는 내전 상황을 방불케 한다. 여당이나 야당, 혹은 청와대든 검찰이든 한 번쯤은 자신들이 권력에 중독돼 오만하고 자아도취적인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를 바란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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