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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관성

입력
2020.12.0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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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검찰 갈등 국민 지치게 만들지만
총장 징계 과정 드러난 문건은 의미심장
검찰 표리부동 없이 정의와 인권 지켜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뉴스1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뉴스1

올해 초 법무부 장관 임명 뒤부터 시작된 장관과 검찰총장의 힘겨루기가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사실이 낱낱이 드러나지 않았고, 그래서 법과 규칙에 근거한 판단도 당장은 섣부르다. 정치권까지 가세해 사안이 증폭되면서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이 다른 국가 현안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피곤함을 호소하는 국민은 늘어나는데, 먼저 털고 나오는 사람이 승자처럼 보일 법도 한 진흙탕 싸움을 그만둘 기색이 정작 선수들에게는 없는 듯하다.

검찰 독립과 개혁의 필요성이라는 오래된 상충이 이번에는 어떤 모양새로 수습될지 알기 힘들다. 하지만 결론이 어찌 나더라도 이 충돌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 작성 주요 재판부 분석 문건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윤석열 총장 지시로 작성됐다는 이 자료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헌법정신'과 '법치주의'를 입에 올리는 검찰의 맨살을 엿본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이 '판사 불법사찰 책임'의 근거로 들었던 이 문건을 공개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의 상식적인 판단을 받아 보자고 나선 검찰총장 쪽이었다. 9페이지 문건에 담긴 내용은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개 정보 이외의 것을 수집한 흔적이 있지만 그것이 사찰에 통상 적용하는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는 다툼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그 결과와 무관하게 검찰총장 변호인 말대로 이 문건이 늘 해오던 것이 아니라 '일회성'으로 작성한 것이라면 그 때문에 더 귀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주요 특수·공안사건 재판부 분석 문건'이라는 제목을 단 이 자료는 작성 당시인 지난 2월 검찰 조직이 맡은 숱한 사건 중 어떤 일에 관심을 두었는지 드러난다. 문서 1, 2페이지에 등장하는 재판부는 조국, 유재수 비리, 조국 부인 정경심 재판부인 것으로, 3, 4쪽은 사법농단사건 재판부인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인 청와대와 그 주변을, 사법부를 겨냥한 수사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떤 방향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해당 합의재판부 재판장의 '주요 판결' 사례 분석에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판사 1인당 하루 약 2건의 재판을 치른다는 통계까지 있으니 주목할 판결이 수두룩할 텐데 검찰은 그중 주로 반정부 시위 사건, 세월호 관련 판결에 관심을 두었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나, 합리적이라는 평가'라는 문장에서 드러나는 검찰의 지향과 별로 다르지 않다.

친절하게도 이 문건에는 판사 주요 판결 사례와 세평의 일부 대목에 밑줄까지 그었다. 이른바 시국 사건에는 어김없고, 세평에는 해당 판사가 '여론이나 주변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거나 '행정처 16년도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 포함' 이라고 한 대목이다. 언론을 활용할 능력이 있는 검찰이 역량을 발휘할 지점이 드러난다.

서울중앙지검 로비에 걸린 '검사 선서'에는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라고 명시하고 있다.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켜'야 하고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 돌보는 따뜻한 검사'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무엇보다 '스스로 더 엄격한 바른 검사'가 되라고 한다. 검찰의 관심을 반영한 이번 논란의 재판부 분석 문건이 과연 이런 대의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 조직의 행태를 고발하기 위해 최근 낸 책에서 검찰 권력이 '국민을 겁박하고 핍박하던 야만의 시대'가 '극적인 방식'으로 지나 간줄 믿었지만 그런 '공동체의 정치적·사회적 각성이 검찰 내로는 침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살아 있는 권력인 검찰이 여전히 '관성의 경로'를 밟고 있다는 그 문제의식을 검찰 조직이 곱씹어야 마땅하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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