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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심성 퍼주기 경쟁된 재난지원금

입력
2020.12.04 01: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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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연말 특수를 노리던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인파가 사라진 서울 명동의 거리. 뉴스1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연말 특수를 노리던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인파가 사라진 서울 명동의 거리. 뉴스1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치권에서 3차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을 때,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재정 당국 고위 관계자는 `재난지원금을 추가로 편성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야당은 "3조 6,000억원", 여당은 "이보다 더 크게"를 외치는 동안 정작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주무 부처는 이 사안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리는 눈치였다.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이 국가기밀도 아니고 이미 야당은 물론 여당도 편성 필요성에 동의했기 때문에 재정 당국의 이런 조심스러운 처사는 언뜻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2차 재난지원금 편성 과정을 돌이켜 본다면 정부가 이 문제에 왜 그렇게 조심스러워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난 3월 1차 재난지원금 편성 때는 정부도 제 목소리를 비교적 선명하게 냈다. 국가 재정을 아끼기 위해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주기보다는 어려운 사람을 골라주자는 선별 지원이 정부 입장이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재난지원금을 표심을 이끌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재정 당국의 목소리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당시 기획재정부가 당정 갈등을 조정하려는 총리실에 반기를 드는 `항명 파동`이 일기도 했지만, 재정 당국 입장은 끝내 반영되지 않았다.

재난지원금이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차기 대권 주자를 포함한 유력 정치인들은 재난지원금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SNS 등에 활발히 밝히며 지지층을 결집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2차 재난지원금 때도 여당의 전 국민 통신비 지원 , 야당의 독감 백신비 지원 주장 등에 대한 효과나 실현 가능성을 따지지 않아 지지율만 생각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었다.

3차 재난지원금을 편성할 때도 같은 모습이 반복됐다. 재난지원금이 내년 1월부터 지급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4월 치러지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표심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정치권이 이 중요 이벤트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확산이 시작되자마자 야당이 먼저 재난지원금을 주자고 목소리를 높였고, 여당은 재난지원금 지급 이슈를 여당에 뺏길까 그보다 더 큰 금액을 편성하겠다고 맞섰다.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는 이번에도 전 국민 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것은 정부뿐이었다.

재난지원금 편성 과정에서 가장 주도적인 목소리를 내야 하는 주체는 정부다. 피해 계층이 얼마나 되는지,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하고 어떤 방식으로 지원을 해야 하는지, 아울러 재난지원금 편성을 위한 재원 조달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정부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후 재난지원금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정치권이 결정한 일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수동적 역할만 하고 있다. 정부가 침묵하는 사이 재난지원금은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참에 정부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재난지원금 지급 매뉴얼을 만들 필요가 있어 보인다.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돼야겠지만, 혹시 4차 재난지원금이 지급되어야 한다면 정부 주도의 차분한 지원금 편성과 집행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민재용 정책금융팀장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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