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푸른 심연에서 막 건져 올린 듯한 목소리가, 녹음실의 긴장된 공기를 가르고 날아올랐다. 녹음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입에서 조용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긴 세월 봉인됐던 목소리가 비로소 해제되는 순간이었다. 삶의 회한을 어쩌면 저토록 담담하게 노래할 수 있을까. 가수의 몸을 거쳐 나온 음표마다 연민의 물기가 가득했다. 5년 전 정미조의 복귀 음반을 녹음할 때의 일이다. 먼 세월 저편의 목소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건너와 내 앞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나는 어떤 성공도 부럽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음반 제작자였다. 이 오롯한 충만함을 위해서라면, 지난 시절 나의 분투도 견딜 만한 것이었으리라.
정미조는 가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있던 1979년, 돌연 가요계 은퇴를 선언하고 파리로 떠났다. 원래 전공이었던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나이 서른이었다. 그 젊은 나이에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스스로 내려와, 새롭고 낯선 곳을 향해 바람처럼 떠나갔다. 세상은 잠시 술렁였다.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TBC TV '쇼쇼쇼'는 그의 고별쇼를 위해 프로그램을 통째 내줬다. 그때 나는 그 프로그램을 지켜보던 지방의 중학생이었다. 그 고별쇼에서 주인공이 하염없이 흘리던 눈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오랫동안 정미조의 팬이었다. 동네 단골 LP바에 가면 늘 '개여울'을 신청했다. 아름다운 소월의 시에 기품 넘치는 정미조의 목소리가 입혀진 이 곡은, 내게 노래의 어떤 이상(理想)이었다. '개여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노래의 주인공을 상상 속으로 불러들였다. 혹시라도 이 목소리를 빌려서 음반을 만든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인생을 오래 걸어온 사람만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고 희미한 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선생이 내 앞에 나타났다. 음반 제작 인연이 있던 최백호의 소개로 만났다.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먼 길을 돌아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려는 순간이었다. 이 극적인 컴백을 어떤 서사와 음악으로 맞이해야 할 것인가?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컴백 앨범 '37년'을 세상에 선보였다. 평단의 호평이 이어졌고, 특히 아무런 친분도 없던 젊은 후배 여가수들의 열렬한 지지가 있었다. 우아한 어른이 주는 어떤 음악적 영감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쿠바의 전설적 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나 아르헨티나 여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처럼, 한국에도 멋진 어른의 음악이 있다는 것을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음악에 어떤 진실이 있다면, 그 진실은 시간의 가장 뒤쪽에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인생을 충분히 견디고 걸어온 사람에겐 시간의 온축(蘊蓄)이 있다. 그 온축의 향기를 세대를 넘어 모두의 가슴에 전하고 싶었다. 몸과 마음의 열기에 취하는 젊은 음악과는 다른 것일 터다. 근본적인 것은 늘 새롭다고 믿었다.
이번 가을, 또 한 장의 정미조 앨범을 발표했다. 가요계 복귀 후 세 번째 작품이다. 12곡의 노래 중 10곡의 가사를 내가 썼다. 긴 오디세이 끝에 다시 음악의 항구로 돌아온 정미조의 이야기 제3장을 쓰며, 삶의 짧고 덧없음을 생각했다. 그 덧없음을 견디기 위해 사람은 노래한다. 아득한 시간 속으로 정미조의 새 노래들을 흘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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