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최근 방한 기간 '광폭 행보'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왕 부장의 발언이나 한중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해석하는 양국의 태도에서 미묘한 시각차가 드러나면서다.
미중 갈등 속에 한국을 대하는 중국의 전략도 바뀐 것으로 확인됐다. 노골적 압박보다는 전략적 관계 강화'로 선회한 것은 중국이 더 치밀해졌다는 뜻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야 하는 한국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미중 신냉전 반대' 화두, 누가 먼저 던졌나
중국 외교부는 지난 28일 "왕 부장이 27일 서울에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를 만나 신냉전과 일방주의에 대한 반대 입장을 강력히 표명했다"는 내용의 보도문을 발표했다.
왕 부장은 "신냉전을 부추기는 시도는 역사 발전 흐름에 어긋나는 것이다. 다자주의를 지키고 협력을 강화해야 각종 위기와 도전을 극복할 수 있다"고 문 특보에게 강조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공개했다. 중국이 꼽는 신냉전 유발 주체는 미국이다. 문 특보는 "한국은 모든 형태의 신냉전 언행을 반대한다. 한국의 '신남방 정책'과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접목해 상생하자"고 답했다는 게 중국의 주장이다. 왕 부장이 ''균형 있는 태도'를 한국에 요구했고, 문 특보가 호응했다'는 게 중국측 설명에 깔린 뉘앙스다.
문 특보 설명은 다르다. 문 특보는 28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왕이 부장에게 '중국과 미국이 관계를 잘 맺어 신냉전을 피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말했다"며 "신냉전 국면을 피해야 한다는 화두는 내가 먼저 던졌다"고 말했다. 문 특보가 한국의 전략적 이익 차원에서 중국에 미중 갈등 해결 필요성을 촉구했다는 의미다. 한국 정부가 '자주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은 준비 덜 됐는데... '전략적 관계' 밀어붙이는 중국
왕 부장의 방한 결과 해석을 놓고 양국 온도차가 감지된 사례는 또 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27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 결과를 전하면서 "한국 측이 중국이 제안한 '글로벌 데이터 안보 구상'을 적극 검토하길 원한다"고 밝혔는데, 한국 외교부 발표문에는 없는 내용이다. '한중 2+2(외교부·국방부 장관)대화' 개최 문제를 논의했다는 점도 중국은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중국의 글로벌 데이터 안보 구상은 화웨이 등 중국 정보통신(IT) 기업을 배제하는 미국의 '5G 클린패스' 정책에 맞선 대응책이고, 2+2 대화엔 주로 중국과의 군사 동맹국들이 참여한다. 두 사안 모두 미국이 예민하게 반응할 사안이지만, 중국은 한국의 적극적 협력을 기정사실화 한 것이다.
중국의 이 같은 태도는 한국에 대한 영향력을 넓히려는 전략이다. 외교 소식통은 "왕 부장이 강조한 다자주의 강화나 2+2 대화, 데이터 안보 구상 등의 공통점은 한중 협력 강화 방안"이라며 "미국 편에 서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대신, 개별 사안을 놓고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도 "중국은 미중 경쟁 차원에서 한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로 모든 사안을 보고 있다"며 "중국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한국의 전략을 먼저 확고히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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