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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장애인선수도 생계 걱정... 직장운동팀 활성화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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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장애인선수도 생계 걱정... 직장운동팀 활성화 절실

입력
2020.11.30 04:30
수정
2020.12.06 12:04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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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 장애인직장운동부의 실험]
올림픽 때 반짝 관심→팀 해체 악순환 반복
서울시 등 팀 늘리지만 예산문제로 역부족
장애인 고용 의무 있는 민간기업 참여 필요

골대를 향해 굴러오는 공을 안대를 쓴 채 온 몸으로 막는 서울시 '골볼' 장애인직장운동부 선수들 모습. 선수들은 칠흙같은 어둠에서 공에 들어 있는 방울 소리로 공의 방향을 파악한다. 골볼 국가대표인 김희진 선수는 "모두가 어둠속에서 공평하게 경기를 해야 하는 게 골볼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제공

골대를 향해 굴러오는 공을 안대를 쓴 채 온 몸으로 막는 서울시 '골볼' 장애인직장운동부 선수들 모습. 선수들은 칠흙같은 어둠에서 공에 들어 있는 방울 소리로 공의 방향을 파악한다. 골볼 국가대표인 김희진 선수는 "모두가 어둠속에서 공평하게 경기를 해야 하는 게 골볼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제공


김희진(26)씨는 중증 시각장애인이다. 중3때부터 골볼(goal ball) 선수로 활동 중인 김씨는 온몸에 멍이 가실 날이 없다. 골볼은 소리가 나는 공을 상대방 골대에 넣는 시각장애인 전용 스포츠. 눈을 안대로 가린 채 마룻바닥에 뒹굴며 몸을 이리저리 날려야 하고, 시속 70㎞ 속도로 어디에서 굴러올지 모르는 1.25㎏ 고무공을 온몸으로 막는 운동이다.

그러나 김씨는 성치 않은 몸보다 밝지 않은 미래가 더 불안했다. 2010년 중국 광저우(廣州) 장애인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엘리트 선수임에도, 서울시에 골볼팀이 새로 생기기 전인 2018년까지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김씨는 "국제대회를 앞두고는 장애인 선수들이 다니던 직장(주로 안마시술소)을 다 그만두고 40~50일씩 합숙한 뒤, 대회 이후 밥벌이를 위해 다시 새 직장을 찾는 악순환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서울시 컬링 장애인직장운동부 선수들이 빙판에서 컬링 스톤을 굴리며 경기를 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서울시 컬링 장애인직장운동부 선수들이 빙판에서 컬링 스톤을 굴리며 경기를 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평창 끝나니 장애인 스포츠단도 해체

저변 자체가 얕고 시기에 따라 지원이 들쭉날쭉한 장애인 스포츠계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이 선수들의 생활 안전망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선수들이 장애의 벽을 넘어 운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아를 실현할 기반을 제공하는 것도 어느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장애인 복지 수단이라는 얘기다.

활동 기간이 짧은 특성상 고용불안 문제를 항상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이 운동선수의 숙명이지만, 장애인 운동선수의 경우 이런 불안은 더 심하다. 뒤늦게나마 지방자치단체 소속 팀에 자리를 잡은 김희진씨는 그래도 운이 좋은 경우. 흥행이 안 된다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은 가장 먼저 '예산 칼질'의 희생양이 되곤 한다. 이달 기준 실업팀에 속한 전국 장애인 선수는 372명에 불과하다.

올림픽이 끝나면 지원이 얼어붙는 일도 반복됐다. 2년 전 평창동계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을 계기로 장애인 체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적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2개의 기업이 창단했던 장애인 탁구팀과 론볼(lawn bowling·잔디밭에서 공을 굴리는 운동)팀은 평창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해 해산했다.

서울에 사는 장애인 약 40만명 중 운동선수로 등록된 장애인은 1,200여명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상설팀에 소속되지 못한 채, 운동과 생계를 힘겹게 병행해 가야 하는 실정이다. 소속팀이 해체되자 인생의 전부였던 핸드볼을 접고 대형마트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속 국가대표 미숙(문소리 분)의 사례는, 장애인 엘리트 스포츠 현장에선 비일비재한 일이다.



휠체어에 앉아 코트를 누비는 서울시 농구 직장운동부 선수들. 서울시 제공

휠체어에 앉아 코트를 누비는 서울시 농구 직장운동부 선수들. 서울시 제공


서울시 적극적이지만 다 끌어안기 어려워

그나마 공공부문이 장애인 선수들의 버팀목이 되어 준다는 점은 다행이다. 현재 장애인 선수 고용 안전망 강화에 가장 적극적인 지자체는 서울시다. 보치아(뇌성마비 중증 장애인의 구기종목), 수영, 양궁, 역도에서 올해 4개 팀을 창단해, 총 9개팀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많다. 장애인 실업팀에 '직장운동경기부'라 는 명칭을 붙여 고용의 중요성을 강조한 게 서울시 장애인 스포츠 정책의 특징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왼쪽 넓적다리(대퇴)를 잃은 수영선수 전형우(18)군은 이달 대전에서 올라와 서울시가 창단한 수영직장운동경기부에 들어가 선수의 꿈을 이어간다. 전군은 "사고가 나기 전엔 수영을 못했지만 재활을 위해 배워 선수까지 됐다"며 "후천적 장애가 생겨 힘들었지만 수영을 하며 다시 희망을 을 수 있었다"고 웃었다. 전군은 패럴림픽에 태극 마크를 달고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것이 목표다.

다만 예산 등 문제로 인해, 장애인 스포츠단의 창단과 운영을 모두 지자체에만 일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시는 장애인 선수 지원에 올해 21억원, 내년 23억원의 예산을 책정했지만 이것만으로 선수 숫자를 늘리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기업-지자체 협력 실험 빛 볼까

그래서 서울시는 장애인 고용 정책의 일환으로, 장애인 의무 고용 비율(100인 이상 3.1%)이 적용되는 기업들에 장애인 선수팀 창단을 유도하고 있다. 기업은 직장운동경기부를 창단해 장애인 선수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서울시가 지도자를 파견하고 훈련장을 제공해 팀 운영을 돕는 사업이다. 기업들 관심도 점차 커지고 있어, 2018년 2개 기업의 참여에 그쳤던 채용 연계 직장운동경기부 창단은 올해 7곳(이달 기준)으로 늘었다. 주용태 서울시 관광체육국장은 "지난해 공공 및 민간 기업과 장애인 직장운동경기부 활성화 업무협약 체결을 맺어 선수 119명에 일자리를 제공했다"며 "앞으로도 기업들의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인들에게 직접 지원(연금·수당 등)이나 세제 지원 등의 혜택을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장애인 직장운동경기부 창단을 통해 취업과 자아 실현의 계기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장애인 복지 정책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재원 용인대 특수체육교육과 교수는 "장애인직장운동경기부는 장애인 선수가 학교 졸업 후 사회에 나왔을 때 생계 걱정 없이 운동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긴 인생 계획을 짤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한다"며 "정부나 지자체와 협조해 장애인직장운동경기부를 더욱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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