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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를 위한 변명

입력
2020.12.0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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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김해신공항 검증 후속 관계장관회의에서 정세균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에 경청하고 있다. 이한호기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김해신공항 검증 후속 관계장관회의에서 정세균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에 경청하고 있다. 이한호기자

"살다 살다 국토교통부 편을 드는 날이 올 줄은 저도 몰랐네요."

지난달 17일 발표된 총리실 산하 검증위원회의 김해신공항 백지화 결정에 대한 의견을 묻자 A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이런 말로 운을 뗐다.

그는 "2016년 의뢰를 받은 전문기관이 김해공항을 신공항급으로 확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정부도 이 제안을 받아들였는데, 검증위가 4년 만에 이를 뒤집어 버렸다"며 "그동안 열심히 준비해 온 공무원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했다. 또한 "국토부는 검증위원 명단도 몰랐다고 하더라. 국토부가 입을 닫고 있는 것은 일종의 침묵시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터넷에 '국토부 김해신공항'을 검색하면 '김해신공항 차근차근 알아보기'라는 페이지가 맨 위에 뜬다. 국토부는 '①왜 김해신공항이 최적 방안일까요' 등 15개 질문을 추려 장문의 글로 하나씩 설명한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2026년경에는 김해신공항이 문을 열도록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

실제로 국토부는 2017년 신공항기획과라는 전담부서까지 신설하며 김해신공항 준비에 박차를 가해왔다. 논란이 불거지면 해명 자료를 내며 김해신공항이 가장 합리적 대안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강조해왔다.

하지만 국토부는 이제 '가덕도신공항 차근차근 알아보기' 페이지를 만들어야 할지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6일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동남권 신공항 입지를 부산 가덕도로 정하고, 각종 행정절차를 단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면 국토부는 법에 따라 가덕도신공항을 추진하는 업무를 하게 된다.

요즘 청와대와 집권 여당의 눈에 국토부는 검찰만큼이나 못마땅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여론조사를 보면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을 짓누르는 양대 악재는 ‘부동산과 윤석열’이다. 국토부는 항공뿐 아니라 부동산 정책도 주무부처다.

특히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후 두세 달이 지나도 혼란이 계속되자 여당 일각에선 국토부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내놓지 않아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는 불만이 흘러나왔다. 민주당이 직접 미래주거추진단을 발족하고 나선 것도 그즈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내년 재보선 ‘필승카드’인 가덕도신공항마저 국토부가 딴지를 걸려 하니 부아가 났을 법도 하다. 민주당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장에서 욕설과 함께 “국토부 2차관 들어오라 해”라고 고함을 친 것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었던 셈이다.

하지만 정작 '표 떨어지는 행동'을 하는 건 누구인지 따져볼 일이다. 국토부가 한 달 넘게 준비한 '11·19 전세대책'은 하루 전날 튀어나온 여당 당대표의 ‘호텔 전세’ 발언으로 엉뚱한 논란만 자초한 채 빛이 바랬다. 발표 다음날엔 여당 미래주거추진단장 진선미 의원이 "아파트 환상을 버려라"는 말로 또 한 번 공분을 샀다. 가덕도신공항 추진에 대해서도 대다수 국민의 반응은 '피로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는 국정농단 사건이 남긴 교훈이다. '촛불 정부'라면 공무원들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해줄 것이라 믿었던 이유다. 국가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복(公僕)이지 집권 세력의 하청기관이 아니다. 그래서 묻고 싶다. 누가 공무원의 '영혼'을 잠식하는가.

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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