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7일 2박3일 간의 한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출국했다. 왕 부장은 이번 방한에서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을 한껏 과시하며 두둑한 성과물을 챙겨갔다. 반면 우리 정부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 등 내심 기대했던 성과도 챙기지 못한채, 중국의 '그림'에 장단만 맞춰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지켜본 조 바이든 차기 미 행정부의 부담만 키운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왕이 "한반도 주인은 남북"...美 개입 견제
왕 부장은 방한 마지막 날인 이날 박병석 국회의장을 예방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남북 양측이야말로 한반도의 진정한 주인"이라면서 "한반도의 운명은 남북 양측의 손에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한반도의 중요한 이웃으로 계속 건설적 역할을 해 나가겠다"고 했다. 마지막 공식 일정에서도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 당사국은 남북, 중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돕는 존재로 규정하는 동시에 미국의 개입을 은근히 견제한 것이다. 왕 부장은 전날 한중 외교장관회담 직후에도 "세계에는 미국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과 중국 모두 독자적인 나라"라면서 한국의 미국 쏠림을 억제하려는 듯한 제스처를 보냈다. 왕 부장은 이날 오전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비롯해 홍익표·윤건영·이재정 의원과 별도의 조찬 회동을 가졌다. 전날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와 150여분 간의 만찬에 이어 정부 여당과 고밀도 스킨십을 이어간 셈이다.
"시진핑 방한커녕 코로나19 통제 숙제 안긴 셈"
외교가에선 이번 왕 부장의 방한에 "한중 고위급 교류 자체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중국의 외교적 노림수에 말려든 측면이 없지 않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이날 "왕 부장의 방한 목적은 결국 바이든 행정부가 대오를 갖추기에 앞서 한국을 향해 '미국에 끌려다니지 말라'는 경고를 하려는 데 있었다"면서 "왕 부장은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하고 돌아간 것인데, '그럼 한국이 얻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뒤따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날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한중 간 우호협력에 대한 목소리는 높았지만, 정작 우리 정부가 내심 바랬던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 해제'나 '입국절차 간소화(패스트트랙) 제도 이행' 문제 등에 대한 중국 측의 명확한 입장도 드러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되레 중국은 한중 외교장관회담 이후 우리 외교부 발표에선 없었던 '한중 2+2(외교·국방)대화' 개회 문제를 논의했다고 일방적으로 공개했다. 2+2대화는 주로 군사 동맹국 간의 안보 협의체다. 차기 바이든 행정부를 향해 과시라도 하듯 한중 간 군사협력 가능성까지 노출시킨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실상 물건너 간 시 주석의 방한 문제에 대한 논의도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전날 왕 부장은 시 주석 방한과 관련, "한국이 코로나19를 완전히 통제해야 가능"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에 대해 신범철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방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중국을 향해 아무말도 못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왕 부장 방한으로 (시 주석 방한 약속은 고사하고) 오히려 '완전한 코로나19 통제'라는 새로운 숙제만 떠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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