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 전략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역사 교육은 단순 암기식에서 벗어나질 못하고있다. 그마저도 필수 교육과정에서 빠져버렸다.”
지식경제부 장관과 한국공인회계사회장 등을 지낸 '경제통'이 ‘날선 역사작가’로 돌아왔다. 이달 저서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를 펴낸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 그는 “전략적 사고력이 없는 사람이 지도자에 올라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그 국가와 민족은 쇄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최 전 장관은 ‘실패한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입시 위주로 역사를 가르치다보니 기억하기 싫은 역사는 교육대상에서 멀어지게 됐다. 그러나 실패한 역사ㆍ선택은 더욱 철저한 분석과 교육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래야 대실패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담은 저서는 17세기 명ㆍ청나라 교체기, 조선의 건국이념, 기술 선진국이던 조선의 쇄락 등 선조들의 실패한 '역사적 선택'을 전략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삼전도의 굴욕은 그 중 하나다. 후금이 1636년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을 때 축하사절로 간 조선 사신들은 청 태종에게 절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해 병자호란을 불러왔다. 결국 인조는 삼전도 땅바닥에 꿇어앉아 청 태종에게 절을 하는 수모를 겪었다. 최 전 장관은 “명분을 중시하는 성리학 관점에서 보면 조선 사신들은 절개 곧은 선비일지 몰라도 백성의 생명ㆍ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위정자 관점에선 매우 무책임한 일을 한 것”이라며 “명나라를 섬기는 사대주의에 종속돼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의 기본마저 져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충효사상을 강조하는 유교가 중국보다 조선에서 더 꽃피웠던 이유는 새로운 지배계층이 유교사상을 기득권을 보호하고 현상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해상ㆍ광산세력의 탄생을 우려한 해금정책과 소극적인 광업정책으로 조선은 중계 무역이 번성할 수 있는 반도국가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게 됐고, 이는 국제무역을 막아버려 조선을 산업혁명의 물결로부터 단절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술선진국이었던 초기의 조선이 쇄락한 원인 중 하나로 최 전 장관은 ‘잘못된 국가체제와 지도층의 철학’을 들었다. 이를 살펴볼 수 있는 사례로 16세기 초 연산군 때 개발된 연은분리법을 꼽았다. 납과 은의 녹는점이 다르다는 점을 이용해 은광석에서 은을 추출한 이 방법은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이 사치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사장됐다. 그는 “조선이 버린 이 기술은 일본으로 흘러들어 일본을 세계 1위 은 생산국으로 만들었고, 막대한 은을 통해 축적한 부는 조선을 침공하는 함선을 건조하고 무기를 생산하는데 쓰였다”며 “당시 은이 세계 무역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하고 있어 은 채굴은 널리 권장돼야 할 일이었지만 사대부는 물욕이 없고 청빈해야 한다는 지나친 윤리의식과 명분에 집착해 도약의 길을 스스로 막아버렸다”고 꼬집었다.
최 전 장관은 실패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선 “약자 코스프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선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평가 없이 ‘간악한 일본이 선량한 조선을 유린했다’는 사고방식으로는 발전할 수 없다”며 “더 멀리 뒤돌아봐야 더 멀리 앞을 내다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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