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유한양행
편집자주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기술수출, 임상시험이 잇따라 실패 또는 중단됐던 지난해의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성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요 기업들이 공들여 축적하고 도입해 결실을 기다리고 있는 기술과 제품들을 기획시리즈로 소개한다.
유한양행은 지난 23일 다국적제약사 얀센에서 6,500만달러(약 720억원)의 기술료를 받았다. 지난 2018년 얀센에 기술수출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후보물질 ‘레이저티닙’이 임상시험 3상 환자들에게 투약을 시작한 데 따른 것이다. 올 4월 임상 1, 2상 진행에 따라 받은 첫 번째 기술료 3,500만달러(약 390억원)까지 합하면 레이저티닙 기술료로 총 1억달러를 수령한 것이다. 국내 제약사가 기술수출한 신약으로 확보한 기술료 규모 중 역대 최대다. 수출 직후엔 반환할 필요가 없는 계약금 5,000만달러(약 560억원)도 받았다.
레이저티닙은 5월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 학술대회(ASCO)에서 임상시험 중간 데이터를 공개했다. 가장 주목받은 부분은 뇌에 암이 전이된 비소세포폐암 환자들에게서 종양을 억제하는 작용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비소세포폐암은 다른 암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뇌 전이가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유한양행 측은 “레이저티닙이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후발주자지만, 뇌 전이 환자에게서 항종양 효과가 나타난다는 게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레이저티닙은 유한양행의 ‘오픈 이노베이션(열린 혁신)’ 정책이 만들어낸 대표 성과로 꼽힌다. 유한양행은 2015년 미국 바이오기업 제노스코에서 동물실험 직전 단계에 있던 레이저티닙을 도입했다. 이후 약효가 잘 나타나도록 물질을 최적화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공정을 개발하고, 동물실험과 초기 임상시험을 진행해 신약으로서의 가치를 끌어올린 다음 얀센에 수출했다. 현재 비소세포폐암 환자에게 레이저티닙을 단독 투여하는 임상시험은 유한양행이 자체적으로, 다른 약과 함께 투여하는 임상은 얀센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서도 레이저티닙은 신약 연구개발 선순환 시스템이 작용한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증권가에서는 레이저티닙의 시장 가치를 1조원 이상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업화에 성공하면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크다.
레이저티닙을 비롯해 유한양행이 세계 시장을 겨냥하고 연구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은 30개에 이른다. 유한양행의 올해 연구개발 투자 비용은 3분기까지 총 1,246억원을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난해 전체 투자 규모(1,382억원)에 육박할 만큼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정희 유한양행 사장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연구개발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며 “레이저티닙을 비롯한 신약개발을 성공시켜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을 드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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