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로 2명 사망... 모텔엔 스프링클러 미설치
서울 마포구 모텔에서 불을 질러 11명이 죽고 다치는 화재를 낸 60대 남성이 방화 직후 태연히 모텔을 빠져나와 "배가 아프다"며 119에 신고해 구급차를 타고 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25일 오전 2시 39분쯤 서울 마포구 공덕동 3층짜리 모텔 1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소방차 31대 등을 투입해 오전 4시쯤 불을 완전히 껐다. 이 불로 모텔 투숙객과 주인 등 14명 중 11명이 연기를 마시거나 화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중 2명은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후송됐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 다른 1명도 중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는 모텔 장기투숙자인 A(69)씨가 자신의 방에 불을 질러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술에 취한 상태로 모텔 주인 박모(58)씨에게 "술을 달라"고 요구했고, 거절당하자 홧김에 모텔 건물 1층 자신의 방에서 라이터를 이용해 불을 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방화 직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맨발에 내의 차림으로 나와 인근 편의점으로 도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폐쇄회로(CC)TV를 보면, 편의점에 들어간 A씨는 편의점 직원에게 휴대폰을 빌린 뒤 119에 전화를 걸어 "배가 아프니 와 달라"는 말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구급대가 오는 5분 동안 A씨는 본인의 방화 사실에 관해서는 일체 말을 하지 않고 태연히 소방관을 기다렸고, 구급대가 도착하자 구급차를 타고 홀연히 떠났다.
구급차를 타고 가던 중 A씨는 그제서야 자신이 불을 지른 사실을 소방관에게 털어놓았다. 이를 들은 소방관은 A씨를 서울역 파출소에 인계했고, A씨는 경찰에 체포됐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이날 공덕동의 현주건조물 방화치사상 혐의로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기초수급자로 별다른 직업 없이 모텔에서 장기투숙한 것으로 파악됐다. 모텔 관계자 한모씨는 “이전에도 매일 술 먹고 소리를 질러 지하 월셋방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모텔에서 술을 팔 수 없음에도 술을 내놓으라고 소리 지르다 이 사달이 났다”고 말했다.
이번에 불이 난 모텔은 주로 인근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 종사자들이 장기 투숙하는 숙소였다. 화재가 발생한 모텔 건물은 1970년 지어진 지상 3층 건물로,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어서 많은 인명 피해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18년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7명 사망, 11명 부상) 이후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등 관련법을 개정해, 다음달 10일부터 2009년 이전에 지어진 고시원과 산후조리원에도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해당 모텔은 숙박시설로 분류되어 있어 제도적 안전망에서 빗겨나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모텔 등 숙박시설은 다중이용시설로 분류되지 않아 개정안 시행 이후에도 스프링클러 의무대상은 아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약자들이 장기투숙객으로 숙박을 해결하는 노후 모텔에도 촘촘한 소방 안전방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 교수는 “사회적 빈곤 계층이 상주하는 고시원의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위해 법안을 개정한 만큼, 장기투숙객이 많은 숙박시설에 대한 제도적 개선책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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