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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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짝사랑

입력
2020.11.25 16:30
수정
2020.11.2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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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기민석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느 날 하늘에서 회의가 열렸다. 지혜 문헌인 욥기에 있는 일화다. 뜻하지 않게 그날 회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사탄이 문제였다. 그날따라 하나님은 평소에 많이 예뻐하던 욥이 생각나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에는 욥만큼 흠이 없고 정직한 사람,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없지!"

인간이 어찌 흠이 없고 악에서 온전히 떠나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욥만 보면 기분이 좋으신 하나님이 하늘 높이 욥을 칭찬했다. 그야말로 '칭찬'한 것인데 아차 싶으셨을 땐 이미 늦었다. 직업 정신에 충실한 사탄이 회의에선 어울리지 않은 하나님의 사적 발언을 낚아버렸다. "설마 욥이 바라는 것도 없이 하나님을 경외했겠어요? 맨날 복을 듬뿍 주시니까 그런 거지. 이제라도 다 빼앗아가 보세요. 분명 주님을 저주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탄은 본래 '고소자'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아마도 사람 사는 세상의 일들을 관찰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하늘의 회의에서 고소하는 직임을 맡은 이인 것 같다. 직임상 늘 비딱하고 까칠한 존재다. 그날은 하나님이 먼저 사탄과 한 차례 하시고 편하게 회의를 진행하고 싶으셨나 보다.

사실 사탄의 딴지는 냉철하고 정확한 지적이었다. 이 세상 어느 인간이 신을 받은 것도 없이 '공짜로' 섬기겠는가?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적어도 죽어서 천국에는 간다는데.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십자가 죽음까지 겪는 은혜를 베푸셨지만, 인간은 사실 계산 다 해 놓고서 하나님을 믿는다. 어느 인간도 복을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는 없다.

하나님이 이를 모를 리 없고, 욥도 다를 바 없다. 기록에 의하면 욥은 자기 자식이 하나라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죄를 지었을까 봐 아침이면 자식 수대로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그의 열렬한 신앙 행위는 자기는 물론 가족들까지 듬뿍 복 받으라고 했던 것이다. 그래도 욥이 사랑스러운 걸 어찌하랴. 사탄의 고소처럼 잘 먹고 잘살게 해주니까 자기를 열심히 따랐다는 것을 하나님도 잘 알지만, 창조주 눈에는 자식 같은 피조물 인간이 그저 사랑스러웠나 보다. 남들보다 그렇게 열의를 내는 욥이 안쓰럽기도 했나 보다.

하지만 사탄은 하나님의 발언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내세운 것은 법이다. 법적으로 그 발언을 따져 보자는 것이다. 실증될 수 없다면 실언으로 비난받아야 한다. 칭찬을 한 것이었는데 그 장르는 고려하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가 어느 법조인 앞에서 "세상에 우리 아들보다 잘생긴 아이가 없어요"하고 사랑을 표현했는데, 그 말의 장르는 무시하고 법적 잣대를 들이대며 그 법조인이 어머니를 고소한 것과 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아직 원빈과 장동건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법적으로는 약간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결과가 어찌될지를 하나님이 모르실 리 없었건만, 하나님은 사탄의 제안대로 정말 욥에게 주었던 복을 거두어 보았다. 욥이 처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지만, 얼마 안 가서 지킬 박사가 하이드로 변하듯 돌변한다. 저주에 가까울 만큼 하나님을 원망하기에 이르렀는데, 중간에 하나님이 회오리바람을 몰고 개입하셔서 판을 엎어 버리셨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사탄과의 내기에 지실 뻔했다. 사탄의 지적이 옳았다는 것만 드러난 이 내기에서 하나님은 낯이 뜨거우셨을지 모르겠지만, 결국 하나님은 욥을 챙기셨다. 마지막에 다시 욥을 회복시킨 것이다.

사탄의 지적은 원칙적으로는 정당하다 할 수 있다. 다만 사탄은 법적인 하자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그 큰 애정이 접수가 안 되는 존재다. 사탄이 법적으로는 옳았다. 다만 싸가지가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조건 없이 사랑하지만, 인간은 조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마음 아픈 사실이지만, 사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짝사랑이다. 이 세상에 신앙의 의인, 신앙의 영웅은 하나님 앞에 있을 수 없다. 욕심 가득 찬 부끄러운 죄인일 뿐. 알면서도 모른 체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세상 앞에 자기 신앙 자랑하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도 없다. 종교인에게는 자중이 미덕이고 겸손이 메리트다.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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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의 호크마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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