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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2013년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물러난 것은 혼외자 파문 때문이었지만 그것을 진짜 이유로 보는 이들은 없다. 사건의 본질은 박근혜 정부 탄생의 아킬레스 건인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를 법대로 밀어붙이다가 찍혀나갔다는 것이다. 채 전 총장의 혼외자가 언론에 폭로되기까지 국정원의 불법적인 정보 수집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감찰을 지시하자 채 전 총장은 스스로 사표를 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청구와 직무 정지 사태 역시 정권 관련 수사를 한 검찰총장 찍어내기 작전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2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밝힌 징계 사유들은 아직 소명되지 않은 의혹들인데, 제대로 조사도 않고 징계를 청구했으니 납득이 어렵다. 새롭게 드러난 ‘판사 불법 감찰’ 혐의는 충격적이지만, 윤 총장은 공소유지를 돕는 차원에서 언론 등에 나온 내용을 파악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으니 일단 조사부터 해 볼 일이다.
□‘윤석열 찍어내기 작전’이 ‘채동욱 뽑아내기 작전’만큼 성공적일지는 두고 봐야 한다.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윤 총장은 사표 아닌 법적 대응을 선택했다. 직무집행 정지 취소 소송은 지난한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것이고 법무부 징계위원회의 결과도 소송 대상이 될 게 뻔하다. 가처분소송 격인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 윤 총장은 다시 총장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고, 혼란스런 상황은 이어질 것이다.
□어쨌건 윤 총장을 임명하고,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라고 격려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오판이라 후회한다 해도 이 무리한 ‘검찰총장 해임 작전’은 황당한 노릇이다. 시민단체가 추 장관을 고발하고 야당이 비판의 공세를 조이며 정국 전반에 파장을 미치기 시작했다. 남을 상처를 생각하면 윤 총장 찍어내기가 현 정권에 이득인지 의문스럽다. 법의 판단에 따라 그러고서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대통령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 무리수는 대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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