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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오미자, 폐공장 찾아... 지방서 '자립'하는 서울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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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오미자, 폐공장 찾아... 지방서 '자립'하는 서울 청년들

입력
2020.11.25 14:5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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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의 한 양조장에서 서울 청년 이경일(왼쪽)씨가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큰 항아리에 쌀을 붓고 있다. 이씨는 금산에 전통주 사업 등록까지 마쳤다. 서울시 제공

충남 금산의 한 양조장에서 서울 청년 이경일(왼쪽)씨가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큰 항아리에 쌀을 붓고 있다. 이씨는 금산에 전통주 사업 등록까지 마쳤다. 서울시 제공


경북 문경에서 오미자 농사를 짓는 한모씨는 올해 '삼재(3災)'를 치렀다. 냉해에 역대 최장의 장마로 평년보다 수확량이 30% 줄었다. 9,900m² 면적의 밭을 상대하자면 사람들 손을 빌려야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인건비까지 올랐다. 작년 7만5,000원이던 외국인 노동자 일당이 올해 9만5,000원. 신종 코로나로 국경에 빗장이 걸리다시피 하면서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진 탓이다. 한씨는 "신종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는데 내년엔 사람을 구할 수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고립... 커지는 지방 소멸 위기

인구 유출과 고령화, 코로나19 여파까지 길게 이어지면서 지방이 신음하고 있다. 사람 발길은 끊겼고, 판로는 막혔다. 가뜩이나 힘든 지방은 이 고립 아닌 고립으로 더 힘들어졌다. '3분기 지역경제동향'에 따르면 올 3분기 전국 서비스업 생산은 서울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감소했다. 서울은 금융과 보험, 부동산의 비중이 커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했지만, 그 외 지역은 도ㆍ소매와 숙박, 운수ㆍ창고업 등에 의존도가 높아 직격탄을 맞은 데 따른 것이다.

단절이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 간 교류를 확대해야 상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간 지방에서 올라온 인재와 산물 덕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수도권 입장에서 보면 지방의 쇠락이 곧 ‘수도권의 위기’가 되는 탓이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전략적 대응을 통해 사람과 정보, 물자의 연계와 분산 기반을 단단히 해야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북 남원 상신마을의 한 장독대를 배경으로 신부가 촬영을 하고 있다. 지역 유휴지 등에서 예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오가닉씨드'가 기획한 이벤트다. 오가닉씨드 제공

전북 남원 상신마을의 한 장독대를 배경으로 신부가 촬영을 하고 있다. 지역 유휴지 등에서 예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오가닉씨드'가 기획한 이벤트다. 오가닉씨드 제공


'지방 자원 활용해 청년 창업' 상생 군불 댄 서울시

지역 간 교류를 통한 상생 프로그램 발굴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서울시다. '함께 살아가야, 함께 살아난다'를 화두로 지역 상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고 있다. 실험성이 가장 돋보이는 대목은 교류의 방식. 만 19~39세 서울 청년들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는 '넥스트 로컬(Next Local)'이 대표적이다. 지역과 무관한 단순 창업으로 서울 청년의 배만 불리는 게 아닌, 지역의 특성을 살린 창업을 도와 현지 경제에도 활기를 불어넣는, '윈-윈' 전략이다.

'넥스트 로컬'로 서울 청년들은 요즘 지방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서울 청년들이 브랜드(brand)의 지역화(locally)를 꿈꾸며 만든 '브로컬리(Blocally)'는 경북 상주에서 오미자로 만든 친환경 샴푸를 개발하고 있다. 상품 가치는 떨어지지만, 오미자 고유의 품성을 갖춘 하품을 활용한 것이다. 버려지는 특산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종의 ‘신재생’ 사업이다. 브로컬리의 김지영씨는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한 뷰티 상품 개발로 상주를 비롯해 제주(브로콜리) 등에서 매입한 특산물은 올해 2,000kg에 이른다"고 말했다. 충남 논산 등 지역 유휴지 등에서 예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오가닉씨드'의 정지영씨는 "올 초 군산 폐공장을 전시관처럼 만들고, 현지 다도회 어머니들을 모셔 다과를 준비해 식을 꾸렸다”며 “동네에 생기가 돈다면서 현지 주민들이 우리를 반겨주시던 게 기억에 남는다"며 말했다.

서울에서 30년 동안 의류 제작일을 해온 곽성순ㆍ황학수 부부는 올 3월 북 무주에서 살고 있다. 서울시의 체류형 귀농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서울시 제공

서울에서 30년 동안 의류 제작일을 해온 곽성순ㆍ황학수 부부는 올 3월 북 무주에서 살고 있다. 서울시의 체류형 귀농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서울시 제공


"30년 일 접고 귀농" 무주에서 키운 희망

체류형 귀농ㆍ귀촌 프로그램은 제2의 삶을 준비하는 서울 시민에게 좋은 '등대'가 되기도 한다. 곽성순ㆍ황학수 부부는 30년 동안 하던 의류 제작 일을 접고 지난 3월부터 전북 무주에서 농촌 살이를 하고 있다. 시가 구례군, 강진군 등 8개 지자체와 손잡고 임차료 60%를 지원하는 체류형 귀농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황씨는 "코로나 사태로 일을 접고 귀농을 준비했다"며 "막막하던 차에 6개월 넘게 현지에서 살면서 마을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일도 배워 내년엔 이 곳에서 둥지를 틀고 버섯 농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류는 쌍방향으로 이뤄진다. 시는 청년 활동 투어 '계절마실' 등을 통해 지방과 서울 청년의 교류 및 협력 활동을 돕는다. 시는 지방과의 인적 교류를 넓히기 위해 18개 사업을 진행했다. 지역 상생 관련 예산도 지난해 240억원에서 올해 약 570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문재인 정부 핵심 국정과제로 지역 균형 발전이 채택되면서 상생 프로젝트는 탄력받는 분위기다.

경북 상주의 한 밭에서 사과를 따고 있는 서울 청년 한재웅씨. 대학에서 중국학을 전공한 한씨는 지역 친환경 농산물을 활용해 '제철 농산물 키트'를 만들고 있다. 서울시 제공

경북 상주의 한 밭에서 사과를 따고 있는 서울 청년 한재웅씨. 대학에서 중국학을 전공한 한씨는 지역 친환경 농산물을 활용해 '제철 농산물 키트'를 만들고 있다. 서울시 제공


이런 지역 상생 투자 강화는 '지속 가능한 한국'을 위해 큰 역할을 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수도권은 집중화로 과열돼 있고, 비수도권은 이탈로 괴사 직전"이라며 "반년 살기 같은 '스테이 체험'을 확대, 지방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느낄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인동 시 기획조정실장은 "힘들 때 상생과 연대가 더 필요하다"며 "서울로의 자원 집중과 지역 소멸이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여러 상생 사업을 발굴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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