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맞서 강제동원 조선인 마을 실상 알려
향년 95세 별세…49재 기간 국내서도 헌화·모금
"쪼맨('조그만'의 경상도 방언)할 때 와도 고향은 지금까지도 눈에 띈다." (2015년 9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재일동포 1세대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일본 우토로 마을을 지켜 온 강경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세. 강 할머니는 2015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배달의 무도' 편에 출연하면서 많은 국민에게 일본에서 강제동원 된 조선인들이 겪는 차별의 아픔을 알렸다.
비정부기구(NGO) 지구촌동포연대와 우토로민간기금재단은 강 할머니가 21일 밤 별세했다고 23일 밝혔다. 발인은 24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할머니의 옛집에 49일 동안 유골을 안치, 빈소를 마련할 방침이다.
1925년 경남 사천군 용현면에서 태어난 강 할머니는 먼저 일본으로 떠난 아버지를 따라 1934년 어린 나이에 가족들과 함께 오사카로 향했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나서는 공습이 잦았던 오사카에서 위협을 느끼고 교토의 우토로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강 할머니는 이후 재일동포 1세대로 우토로 마을을 지켜 왔다.
우토로 마을은 1940년대 조선인 1,300여명이 군 비행장 건설 현장에 강제로 끌려가면서 형성됐다. 광복 이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이들은 고철 수집 등 고된 막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 갔다. 수도시설조차 없고, 비만 오면 잠길 정도로 척박한 땅이었지만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았던 조선인들은 터를 일구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다.
조선인들이 모여 살며 우리말과 문화를 잊지 않으려 되새기는 모습이 달갑지 않았을 일본 정부는 우토로 마을을 핍박했다. 일본 정부가 몰래 땅을 매각, 1989년 토지소유권자는 주민들에게 토지 양도 소송을 제기했다. 이른바 '우토로 재판'에서 2000년 패소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강제 퇴거 위기에 놓였다.
우토로 주민들은 거주권을 주장, 방방곡곡을 다니며 실상을 알렸다. 당시 강 할머니는 집을 부수려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 차량을 막기 위해 맨땅에 드러눕는 등 우토로 마을을 지키려 혼신을 다했다. 이 호소는 일본을 넘어 국내에도 닿았다. 한국 정부와 한일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우토로 마을에 전달, 주민들은 땅을 일부 구입해 이주할 수 있었다.
2018년 성금으로 지은 1기 공용주택이 완공돼 우토로 마을 40가구가 거처를 마련했다. 12가구 입주가 예정된 2기 공용주택은 내년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본래 우토로 마을은 철거됐다. 연대 및 재단 측이 우토로 마을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설계한 우토로평화기념관도 내년 하반기 착공, 2022년 5월 완공해 개관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최근까지 강 할머니는 우토로 마을 재일동포 1세대 중 마지막 남은 생존자로서 각종 방송 등 언론에 조명돼 왔다. 그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고향을 또렷이 기억하고 '팔도강산' '밀양아리랑' 등 우리 노래를 부르며 고국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알려졌다. 한 차례 입국해 서울 땅을 밟았지만, 고령이라 고향을 다시 찾지는 못했다.
연대 및 재단 측은 강경남 할머니 49재 동안 국내에서도 헌화·모금 등으로 애도를 표할 수 있도록 하고, 온라인 추모 영상을 만들 계획이다. 모금액은 근조 꽃바구니 구매 등 빈소를 차리는 데 쓰이는 비용을 제외하고는 유족에게 조의금을 전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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