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상자에 드디어 구멍이 뚫렸다. 무거운 상자 양쪽에 손잡이로 쓸 구멍이라도 뚫어달라고, 택배 및 마트 노동자들이 정부에 요구한 지 1년 만이다. 택배상자에 구멍이 있으면 들기 쉽고 운반도 편해질 뿐 아니라 상자의 체감 중량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노동현장의 소박한 요구에 해결을 약속한 것은 고용노동부 장관이었지만, 첫 적용은 집배원들이 운반하는 우체국 택배상자부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우정사업본부는 23일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에서 구멍 손잡이 택배상자 시연행사를 갖고 판매를 시작했다. 총 6종류의 택배 상자 중 구멍 손잡이는 무게 7kg 이상 소포에 사용되는 5호에만 적용됐다. 이물질 반입을 막고 내구성을 고려해 완전히 뚫지 않은 ‘반 구멍’ 형태로, 손을 집어넣으면 자연스럽게 뚫리게 돼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택배상자 양쪽에 뚫린 구멍 손잡이 덕분에 집배원과 택배기사, 분류 작업자 등의 노동강도가 미약하게나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마트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 실태조사’에 따르면 상자에 손잡이를 만들 경우 상자 전체 하중의 10% 이상을 줄일 수 있다.
여직원 비율이 높은 우체국 택배 접수창구의 경우 무거운 택배상자를 옮길 때 이전보다 힘이 덜 든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중앙우체국에 근무하는 한 여직원은 “전에는 앉아서 품에 안듯이 들어야 됐는데, 이제 손잡이가 있으니까 허리만 살짝 굽혀서 운반할 수 있어 편해졌다"고 전했다. 한 집배원은 “물건을 운반하는데 드는 노동강도뿐 아니라 운반 시간도 20%이상은 절감되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택배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구멍 손잡이는 관련 업종 종사자들의 고충을 덜 수 있다는 데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올 한해 과로사로 13명 이상의 택배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노동 현실을 감안하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구멍 손잡이가 노동 환경 개선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자에 구멍을 뚫어 중량감을 더는 것보다 하루 수십, 수백 개에 달하는 상자 운반 건수를 줄여주는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날 시연행사에는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박종석 우정사업본부장, 이동호 우정노조위원장, 신동근, 이용빈,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구멍 손잡이 택배상자를 들고 옮기는 체험을 한 최 장관은 “(택배상자 구멍 손잡이를) 정부기업인 우체국에서 선도적으로 도입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며, 유통, 물류 현장 전반에 확산돼 여러 종사원의 고충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우체국에서 판매한 7kg 이상 택배상자는 370만개로, 코로나19로 비대면 문화가 정착된 올해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해당 상자를 우선 수요가 많은 수도권과 강원지역 우체국에서 판매를 시작해, 내년까지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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