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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에서 아프면 서럽지

입력
2020.11.23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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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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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활을 하다 보면 몸이 아플 때가 가장 서럽다. 아픈 것도 힘든데 나라마다 의료 체계가 달라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는 민첩성과 참을성이 요구된다. 영국과 독일은 서유럽의 복지국가라는 명성답게 국민들이 빈부의 큰 격차 없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영국의 국민건강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는 세금으로 운용되는 제도로, 동네마다 일반의(General Practitioner, GP)들의 사무실(GP Surgery)이 있어 크고 작은 질병이나 사고에 대해 무료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무료인 만큼 예약에서 진료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다.

세금으로 운용되는 영국의 의료제도와는 다르게, 독일에서는 대부분의 국민이 의무적으로 보험료를 내는 국가의료보험(Gesetzliche Krankenversicherung, GKV)에 가입되어 있고, 일부 사람들은 민간의료보험(Private Krankenversicherung)을 가지고 있다. 독일의 경우도 정기적으로 내는 보험료 이외에는, 의사 진료 시 개인이 별도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없다. 다만, 막상 병원에 가면 민간의료보험 환자를 더 선호하는데, 그 이유는 병원 측에서 같은 진료에 대해 민간보험사에 더 많은 비용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서유럽에서 국가 주도의 보편적 의료제도가 시행되는 것과 반대로, 미국은 자본주의가 최고도로 발전한 나라로서 의료보험도 민간 기업들이 경쟁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미국도 주정부나 연방정부가 나서서 관여하는 의료제도-65세 이상 노인들을 위한 메디케어(Medicare); 극빈층과 장애인을 위한 메디케이드(Medicaid)-가 있다. 이 둘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에는 회사를 통하거나 개인적으로 의료보험에 가입하는데, 이 보험사들은 민간 기업들이고 정부가 의료비를 통제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비나 보험료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엄청 비싼 편이다. 이 보험료 이외에도 진료를 받을 때마다 개인 부담금을 별도로 내야 한다.

문제는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대상자가 아니면서 비싼 민간보험을 감당할 수 없어, 의료보험 없이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게 미국의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행된 소위 '오바마케어(Obamacare, '환자보호와 저렴한 의료법'·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는 정부 보조금을 통해 수많은 저소득층이 의료보험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의료 관련 이익집단들의 이해관계와 정치적인 반대로 오바마케어의 시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어 왔고, 아직도 3,000만명가량의 사람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독일과 비슷한 보편적 건강보험제도가 있으면서, 국가보험과 민간보험을 차별하는 독일의 행태가 없는 한국. 보편적 건강보험제도가 있어 그렇지 못한 미국보다 훨씬 낫고, 의료비와 보험료가 미국보다 월등히 저렴한 한국. 집 가까이에서 빠르고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한국의 병원과 의사들. 세계 어느 국가와 겨뤄도 지지 않을 의료기술과 서비스 등을 생각해볼 때 한국이 정말 좋은 나라임을 느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고국을 그리워하고 있다.



김윤정 ‘국경을 초월하는 수다’ 저자ㆍ독일 베를린자유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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