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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골육상쟁(骨肉相爭)은 뼈(骨)와 살(肉)이 서로 다툰다는 뜻이다. 보통 가족 간의 싸움을 일컫는다. 혈족이면 으레 우애롭고 화목할 것이라는 통념을 배반하는 비정한 말이지만, 사실 부와 권력의 세계에서는 그런 통념이 부질없이 느껴질 정도로 골육상쟁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 없다. 그 중에서도 중국 후한 시대 위왕 조조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아들 간의 싸움은 이 사자성어의 기원으로 꼽힌다.
▦ 조조에 이어 등극한 장남 조비는 늘 자리가 불안했다. 무엇보다 반대세력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형제들이 문제였다. 결국 선친이 가장 아꼈던 동생 조식을 제거키로 마음 먹고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시 한 수를 짓지 못하면 대법(大法)으로 다스리겠다”며 조식을 겁박한다. 그러자 조식이 눈물을 흘리며 읊은 시가 “콩을 삶기 위하여 콩대를 태우나니, 콩이 가마 속에서 소리 없이 우노라(煮豆燃豆?, 豆在釜中泣)”며 골육상쟁을 한탄한 ‘칠보지시(七步之詩)’다.
▦ 우리나라에서도 왕가의 골육상쟁은 고구려의 망국을 부른 연개소문 아들 3형제의 분쟁부터 조선왕조 초기 태종의 왕권 장악과정에서 빚어진 ‘왕자의 난’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되풀이됐다. 다만 근대 이후엔 왕조가 소멸하면서 궁중 골육상쟁은 사라졌으나, 막대한 부를 쌓은 재벌가의 골육상쟁이 세대교체 때마다 불거져 삼성가와 현대가 같은 재계 굴지의 가문조차도 추문을 비껴 가지 못했다.
▦ 한때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을 거느리며 국내 최대 운송재벌로 도약한 한진그룹 역시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 사후 골 육간 경영권 다툼에 바람 잘 날 없었다. 창업주 타계 후엔 조양호 회장 등 2세 4형제 간 다툼이 치열했고, 조양호 회장 타계 후엔 갑질과 밀수 같은 추문 속에서 집안의 장남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이 맞서 극한적인 경영권 암투를 벌이고 있다. 급기야 조 전 부사장 측은 최근 대한항공으로서는 절호의 회생기회가 될 수도 있는, 아시아나 인수를 위한 정부 지원에 반대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집안싸움에 국가 항공산업 회생 구도까지 난항에 빠지는 것 아닌가 싶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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