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사랑이라면 어떤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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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사랑이라면 어떤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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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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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응급실에 암 환자가 왔다. 타 원에서 항암치료를 받던 중 집에서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우리는 심정지라는 연락을 받아 준비하고 있었다. 호흡곤란은 감염 증상이기에 방역복을 갖춰 입고 대기해야 했다. 병색이 완연했으나 완벽히 마른 몸은 아니었다. 보호자는 잠시 후 도착한다고 했다.

당장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다만 암 말기일 경우 대체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이 연명치료 중단 서약서를 작성해 둔 상태이기도 하고, 의학적으로도 소생술이 거의 무의미하다. 살아나더라도 암 말기의 육체가 심정지를 견딜 수 없으며 암은 그 자리에 있다. 우리는 일단 심폐소생술에 들어갔지만 보호자의 진술에 따라서 소생술을 중단할 생각이었다.

잠시 뒤 도착한 보호자와 면담했다. 타 원에서 4기 암 진단을 받았고 눈앞에서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했다. 연명치료 서약서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없다고 했다. 나는 지금 심정지 상태이며 소생술은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편하게 돌아가시게 하는 편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절박해 보이는 아들의 답은 의외였다.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제발 부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고 했다. 일단 알았다고 했다.

방역복을 다시 입고 환자 앞에 섰다. 어차피 어려워 보이는 소생술이었다. 보호자의 말이 아른거려 일단 모든 처치를 진행하기로 했다. 30분 정도 심폐소생술을 해 볼 수 있었다. 놀랍게도 20분 만에 환자의 심장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머지 신체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오래 버틸 것 같지는 않았다. 곧 두 번째 심정지가 발생했다. 다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한 번 시작했으니 그만두기 어려웠다.

교착 상태는 두 시간이나 이어졌다. 곧 생명을 놓아버릴 것 같다가 맥이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었다. 벌써 다섯 번째 심정지였다.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이제 정말로 가망이 없었다. 기계가 환자의 흉부를 지겹게 누르고 있었다. 나는 보호자를 설득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로 방역복을 벗고 소생실 바깥으로 나갔다.

보호자는 대기실에 있었다. 그는 편하게 앉아 있지 않았다. 그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버지가 계신 방향으로 머리를 땅에 조아린 채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불시에 설명을 하러 나왔다. 그는 꼬박 두 시간 동안 저 자세로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그 긴 시간 같은 자세로 기도할 수 있는가. 의학적으로 가망 없는 말기 환자의 생환을 빌기 위해서. 방금까지 나는 저 기도와 함께 싸웠던 것이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괜히 대기실을 산책하듯 한 바퀴 돌아 다시 소생실로 돌아왔다.

환자의 맥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놀랍게도 호흡도 조금 돌아왔다. 오래 살아 있기는 어려웠지만, 지금 당장 돌아와는 있었다. 보호자들에게 면회를 시켰다. "너무 좋은 아버지였어요. 부디 조금이라도 더 살아계셔야 해요. 힘을 내세요." 여기 지나는 수많은 말기 암 환자, 그리고 좋은 사람. 괜히 마음이 굳어져 소생실을 나왔다. 우리는 어차피 최후의 순간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은 누구도 같지 않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모든 사랑을 다해 지켜내려는 죽음 또한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운명을 거스르지는 못할지라도, 기도와 사랑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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