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저지른 만행 배경에 거대 화학회사 이게파르벤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스피린으로 유명한 바이엘의 모기업이었던 이게파르벤은 전쟁 중 나치와 손잡고 아우슈비츠를 탄생시켰다. 이 책은 아우슈비츠에 '주임 약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저자가 그에 대한 정보를 수년간 수집해 파고든 결과물이다.
동료 시민 최소 8,000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은 뜻밖에도 매우 평범한 제약회사 세일즈맨이었다. 루마니아 태생으로 약사로 일하기도 했던 카페시우스는 바이엘 영업 사원으로 근무하던 중 군대 복귀 명령을 받고 아우슈비츠에 배치된다. 그는 수용소의 유태인을 대상으로 벌인 생체실험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이게파르벤과 나치의 지시에 따라 성실하게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아무런 망설임이나 불편함을 내비치지 않았다고 한다.
패전 뒤 재판에서도 그는 무죄를 주장했다. 판사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저자는 카페시우스가 나치 장교가 되는 과정과 수용소 주임 약사로서 저지른 잔혹한 행위, 전범재판 과정까지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차근차근 추적한다. 이를 통해 생체실험의 주도권이 나치 친위대가 아닌 돈벌이에 눈이 멀었던 이게파르벤에 있었다는 사실도 밝힌다. 고향 루마니아에서 유태인들과 잘 어울렸던 카페시우스가 재판에서 웃음을 터트리는 장면에 이르면 악마성과 평범성의 차이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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