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악기엔 숲속의 영혼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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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악기엔 숲속의 영혼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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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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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조은아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한때 평범한 한 그루 나무였다. 살아서 침묵했으나 죽어서 소리를 낸다. 좋은 연주자를 만나면 그 소리가 아름답다.” 한 피아노 제작자가 자신의 악기에 정성스레 문구를 새겨 넣었다. 이렇듯 악기의 울림은 나무의 사후세계를 드러낸다. 나무는 죽어서도 깊고 풍성한 울림으로 살아나 사람들을 일깨우고 보듬는다. 연습실에 갇힌 피아노라도 숲의 영혼이 담겨있다. 그러니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나무와 만나는 일이다.

악기의 몸체가 되는 나무들은 어떤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나무의 음향학적 성질은 무엇일까. 멸종위기의 나무들은 악기제작에 얼마나 치명적인 위협일까. 연습실에서 마주한 피아노가 일깨운 질문들을 이 글의 열쇠로 삼으려 한다.

소리를 만드는 나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악기의 가장 훌륭한 공명체로 사랑받아 왔다. 금속이나 토기, 유리 같은 여타 재료보다 가볍고 탄성이 커서 소리가 오랫동안 머물고, 작은 진동이라도 효율적으로 증폭시켜 깊은 울림을 자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악기는 나이를 먹을수록 귀에 거슬리는 고주파의 소리를 억제하고 좋은 음파를 내뿜으며 성숙해지는데, 이를 에이징 효과라 일컫는다. 악기는 살아있는 나무처럼 개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계절에 따라, 놓인 환경에 따라,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고유의 음색도 자연스레 진화한다.

피아노 공명판의 주재료인 가문비나무는 음향을 증폭시키는 핵심역할을 한다. 촘촘하고 고른 가문비의 나뭇결은 음향을 막힘없이 진동시킨다. 여리게 떠는 현의 울림을 강력한 소리로 변화시켜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콘서트용 그랜드 피아노엔 262㎝ 길이의 가문비가 통째로 투입될 정도로 단일 나뭇조각으로는 가장 거대한 크기에 손꼽힌다. 가문비는 고산지대에서 모진 추위와 바람을 견디며 느리게 성장한 나무일수록 울림이 좋다. 더디게 자라야 조직이 치밀하고 밀도가 탄탄하며 열기와 물기를 잘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더운 기후에서 웃자라 옹이가 많고 뒤틀린 나무는 악기의 진동을 방해시켜 소리가 탁해져 버린다. 기후 온난화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가문비의 나이테를 단단히 벼를 고독한 추위를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커다란 욕조처럼 생긴 그랜드 피아노의 기본틀은 림(Rim)이라 불린다. 150㎏이 넘는 무쇠 프레임을 앉혀야 하고, 4,700개가 넘는 자그만 부품이 맞물린 복잡한 액션장치를 품어야한다. 이렇게 거대한 하중을 지탱하면서 외부 충격으로부터 피아노의 내장을 보호하자면, 바위처럼 단단한 나무가 필요하다. 이때 옹이가 많고 나뭇결이 어지러운 호두나 벚나무는 어울리지 않는다. 반면 내구성이 뛰어난 단풍나무는 이 외형의 좋은 재료가 된다. 단풍은 가문비처럼 나뭇결이 촘촘하고 부드러워 저음역부터 고음역까지 훌륭한 균형의 사운드를 공명시킬 수 있다. 피아노뿐만 아니라 목관악기 중 저음역을 관장하는 바순과 현악기의 뒷판으로도 사용되는데, 곰팡이균에 감염된 단풍나무는 종종 독특한 무늬를 발하며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피아노가 22세기까지 살아남는다면 과연 어디서 나무를 구할 수 있을까. 이미 멸종위기에 처한 브라질 로즈우드(마림바의 재료)나 아프리카 흑단(오보에, 클라리넷)은 국제협약을 통해 벌채와 거래가 진작에 금지되었다. 게다가 벌목업자들은 나무의 성장을 충분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린 나무를 무차별 베어버리고 있다. 피아노 공명판의 핵심인 길고 너른 가문비 널판은 더 이상 찾기 어려워졌다. 이렇듯 기후위기와 환경파괴는 음악활동의 생태계와도 처절히 직결되어 있다. 가문비와 단풍나무가 100년 후에도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을까. 암담한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늦지 않게 행동할 수 있을까.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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