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인터뷰
"예산 심사, 대충·밀실주의 그 자체
국회 결과 안 묻고, 정부 준비 안해"
“이게 어떻게 민주주의입니까!”
지난 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전체회의.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간사가 비밀리에 합의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기습’ 상정, 의결 절차를 밟자 이렇게 말하며 회의장을 빠져 나왔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은 ‘국회 상임위 예산결산소위원회 심사→상임위 전체회의→예산결산특별위원회→본회의’를 거친다. 조 의원을 포함한 산자위 예결소위 의원 12명은 이틀에 걸쳐 산자위 담당 예산안을 심사한 후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상태였다. 그런데 전체회의 당일 소위안(案) 대신 여야 간사 단 둘이서 비공개로 합의한 수정안이 올라오자 조 의원이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조 의원은 22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산자위의 예산 처리 과정은) 대충주의, 밀실주의 그 자체였다”고 직격했다. 21대 국회 초선 의원인 그는 대학교 3학년 때 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미국 하버드 케네디스쿨을 졸업한 후 전세계 ‘선수’들이 모이는 세계은행(WB)에서 15년 간 근무한 경제 전문가다.
그런 조 의원이 전체 정부 예산(555조8,000억원)의 15%를 차지하는 산자위 소관 예산(83조7,000억원)을 심사하며 느낀 건 '실망감' 그 자체였다. 항목별 예산은 사업 성과·효과가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증액되거나 잘려나갔다. 거대 양당의 지도부는 밀실에 몸을 숨긴 채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예산을 주물렀다. 조 의원은 “자기 돈이라면 이렇게 쓰겠느냐”고 반문했다.
-12일 산자위 전체회의 때 예산안에 “동의할 수 없다”며 회의장을 나왔다.
“이달 2일부터 이틀에 걸쳐 산자위 예산소위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소관 부처 예산을 심사했다. 무려 23시간 58분이 소요됐다. 3일 중기부 예산 심사 때는 13개 예산을 증액할지, 감액할지 여부를 두고 여야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합의 자체가 뒤집힐뻔했다. 제가 중간에서 이견을 조율했다. 결국 소위(12명) 만장일치로 예산안을 의결했다. 그런데 전체회의 때 소위안이 아닌, 여야 간사끼리 합의한 수정안이 기습 상정됐다. 소위안이 이렇게 뒤집힌 경우는 처음이다. 여당 의원들도 당황했다. 이유를 캐물었지만, ‘간사끼리 합의했다’는 대답뿐이었다.”
-예산안 내용이 많이 바뀌었나.
“6, 7개 사업 예산이 변경됐다. 전력 사용량 등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지능형 전력계량 시스템(AMI)을 아파트에 보급하는 ‘가정용 스마트전력 플랫폼’ 사업이 대표적이다. AMI가 설치되면 전력 사용 패턴을 분석해 수요가 적을 때 전력을 적게 공급하는 식으로 대기전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소위에서 ‘정부안(1,586억원) 유지’로 중지를 모은 이유다. 그런데 여야 간사가 610억원을 삭감했다. 설명도 없었다. 다른 예산도 다 이런 식이었다. 상임위에서 증액한 예산은 예결위에서 조정할 수 있지만, 감액 예산은 보통 그대로 간다. 상임위 감액은 ‘최종안’ 성격이 있다. 그런데 여야 간사가 별 논의 없이 이렇게 결정한 것이다.”
-왜 그랬다고 보나.
“야당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정부안에서 예산을 대폭 깎아야 ‘야당이 제대로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소(小)소위’ 등 비공식 회의를 열고 예산안을 주고 받기 식으로 결정하는 관행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세계은행에서 재정 분야 업무를 맡을 당시 흥미로웠던 건 (국내총생산 등 경제 지표가 떨어지는) 나이지리아가 우리보다 예산안 심사와 관련된 자료를 훨씬 더 많이 공개한다는 점이었다. 예산은 국민의 소중한 혈세다. 그런데 소수 여야 의원들이 밀실에서 배분한다. 심사가 비공개로 진행되고 기록도 남지 않는다. 자기 돈이라면 이렇게 쓰겠나. 속기록이라도 남겨야 한다. 언론, 시민단체가 보고 있으면 함부로 그렇게 장사 못한다.”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느낀 아쉬운 점은 또 뭐가 있나.
“결과 중심의 심사가 절실하다. 가령 ‘가정용 스마트전력 플랫폼’ 사업을 심사한다면 AMI 보급 후 실제 절감된 전력량이 어느 정도인지, 비용(예산) 대비 편익은 어떤지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 이런 논의가 별로 없다. 집행률이 높으면 통과시키고, 낮으면 삭감하는 식이다. 국회가 예산의 ‘아웃풋(결과물)’을 캐묻지 않으니 정부도 준비하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예산서를 살펴보면 각 사업 예산별 집행 결과에 대한 내용이 두텁다. 우리는 정반대다. 수천 페이지 분량의 예산서에 정작 결과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①모든 심사 과정에 대한 ‘닥치고 정보 공개’ ②결과 중심의 심사, 이 두 가지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그래야 예산안 심사의 투명성·효과성·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