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명 확진…81일만에 신규 환자 300명 넘어
정은경 청장 경고보다 빠른 확산세에도
정부 "현 거리두기 유지, 소비쿠폰 계속"
전문가들 "정부 지나치게 안일하다" 비판
방역보다 경제살리기 방점…잘못된 신호 우려
18일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8월 중순 2차 대유행 이후 81일만에 300명을 넘어섰다.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1.5단계 격상(19일 시행) 발표 하루 만이다. 지난 16일 "2~4주 후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300~400명 가까이 발생할 수 있다"던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경고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소규모 집단감염과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급격한 확산세에 전문가들은 "3차 대유행이 본격화됐다"며 방역 강화를 앞다퉈 주문하지만, 정작 정부는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하지 않고 상황을 호전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의 급한 불이 치솟고 있지만 예고한 대로 2주간 지금의 방역수위를 유지하며 확산세를 컨트롤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국민에 여행과 숙박을 장려하는 소비쿠폰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위기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경제 살리기에 방점을 찍은 듯한 정부의 대응이 자칫 방역 허점을 키울 잘못된 시그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확진자 수는 전일 대비 313명 늘어 누적 2만9,311명에 달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2차 대유행이 한창이던 8월 29일(323명) 이후 처음으로 일일 확진자가 300명을 넘었다. 이 중 지역사회(국내) 발생이 245명인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그간 지역사회 발생은 하루 30~100명대를 오가며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이날 9월 2일(253명) 이후 77일만에 처음으로 200명대를 넘어섰다. 1,2차 대유행을 겪으면서 늘어난 무증상·경증 감염자들이 지역사회 곳곳에 퍼져있다 방역이 느슨해진 틈을 타 소규모 집단감염의 형태로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최근 집단감염은 특정 집단이나 지역, 속성을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날 정오 기준으로도 △서울 도봉구 의류작업장(14명 확진) △서울 서대문구 요양원 (9명) △서울 송파구 지인여행 모임(17명) △수도권 온라인 친목모임 (19명) △경기 안산시 수영장(11명) △경기 광주시 가족·피아노 교습(10명) △경기 가구업자 모임(10명) △강원 속초시 요양병원(10명) △경남 하동군 중학교(9명) 등 9건의 신규 소규모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박영준 질병청 역학조사팀장은 "5명 이상을 집단감염으로 분류했을 때 전국적으로 하루 평균 10건 정도가 발생하고 있다"며 "(집단감염 발생) 전선이 많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부분 다중이용시설을 통해 전파가 일어나고 있어 전에 비해 노출자 추적에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가고 전파 속도 또한 따라잡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자 곳곳에서 "2단계로의 격상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부는 "(2단계는)서민경제에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신중한 모습이다. 2단계 시행시에는 유흥시설들에 대해선 영업정지와 다름 없는 집합금지가 이뤄진다. 강도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전국적 대규모 재확산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언급하면서도 "거리두기 2단계 상향기준 도달 시점에 대해 검토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못박았다. 더구나 그는 지난달부터 시행 중인 숙박과 여행, 외식분야에 대한 소비쿠폰도 "위험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사업방식을 바꿀 수 있는지 관계부처와 논의 중"이라며 중지 가능성을 배제한 안이한 모습을 보였다. 강 조정관은 '3차 대유행'이란 표현에 대해서도 "엄중한 시기인 건 맞지만, 3차 대유행이라 지칭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나친 신중함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며 이미 '3차 대유행'이 본격화됐다고 경고했다. 하루 확진자 규모 추이를 살피며 선제적으로 거리두기 격상을 단행했어야 하는데 실기하면서 확산세가 거세졌다는 것이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지난달 12일 거리두기 1단계 적용 후 일별 확진자 수가 50명대에서 100명대로 서서히 늘었는데도 정부는 특별한 대응 없이 개인방역 수칙 지키기만을 강조했다"며 "그 사이 경계심이 풀어져 이동량이 늘고, 위험신호가 나타났는데 이 때도 새롭게 방역을 강화하지 않아 결국 폭발적 증가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이어 "정부가 코로나19 초창기였던 1,2월에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굉장히 빠르고 강력하게 대응했고, 덕분에 위기를 빠르게 모면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로 하고 있다"며 "유행 양상만 보면 1,2차 때보다 심각해 오히려 더 강력한 방법이 필요한데 정부 대응은 지나치게 안일하다"고 비판했다.
확진자 증가세에 가속도가 붙은 만큼 브레이크를 최대한 강하고 빠르게 잡지 않으면 의료체계 붕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지금 드러나는 환자 200~300명은 이미 일주일 전쯤 감염된 사람들"이라며 "무증상, 경증 환자를 감안하면 확진자가 최소 5배, 최대 10배 이상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2월 말, 8월 중순 때 유행 형태를 보면 순식간에 일별 신규 확진자 수가 100명 이상씩 늘어났다"며 "지금도 가속도가 붙은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방역은 타이밍이 생명"이라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판단하고 그에 맞는 과감한 조치를 하지 않으면 속절 없이 바이러스에 당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의료체계 붕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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