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온통 ‘오른쪽’… 서러운 왼손잡이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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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온통 ‘오른쪽’… 서러운 왼손잡이의 하루

입력
2020.11.19 04:30
수정
2020.11.1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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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기본'인 세상에서 왼손잡이들이 설 곳은 좁디좁다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가수 ‘패닉’의 ‘왼손잡이’ 중)

왼손잡이는 ‘비정상’이었다. 밥상머리에서 왼손으로 수저를 들면 ‘재수없다, 버릇없다’는 구박이 날아왔고, 왼손으로 글씨를 쓸 땐 ‘그거 언제 고칠거냐’는 핀잔이 꽂혔다. 단지 사용하는 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어딜 가나 ‘비주류’의 설움을 감당해야 했다.

왼손잡이의 일상은 과연 전보다 나아졌을까?

시대가 바뀌며 왼손잡이를 '교정 대상'으로 보는 시선은 점차 사라졌지만, 일상의 불편함은 그대로 남았다. 세상은 여전히 ‘오른손잡이' 위주로 돌아간다. 건물 출입문부터 마우스까지, ‘차별’이라고 하기엔 사소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명백한 ‘불이익’이 도처에 널렸다. 25년 전 가수 패닉이 부르짖던 ‘왼손잡이’의 설움은 과연 사라졌을까. 한국일보 뷰엔(view&)팀이 왼손잡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엘리베이터 조작버튼은, 밖에서도 안에서도 오직 '오른쪽'에만 마련돼 있다.

“어렸을 때 선생님도 부모님도 고치라고 하셨죠. 언니도 왼손잡이인데, 결국 고쳤거든요. 저는 오른손을 쓰는 게 너무 힘들어서 결국 포기했고요. 왼손잡이라서 심각하게 고통스러운 적은 없었지만, 불편은 여전하죠.” 영상 편집을 배우기 시작한 대학생 전모(23)씨는 얼마 전 마우스를 고르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다양한 인체공학적 디자인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왼손잡이 전용(Left-handed)’ 마우스를 구하기가 이리도 힘들 줄은 몰랐다. 일단 생산되는 제품군 자체가 극소수다. “결국 오른손으로 마우스 쓰는 법을 익혔죠.” 오른손잡이에 맞춰 설계된 물건에 억지로 적응하다 보면 미세 감각이 둔화되면서 섬세한 조작이 불가능해지지만 별다른 수가 없다.

왼손잡이 김모(25)씨가 고정상태인 왼쪽 편 문을 열어보고 있다. 왼손잡이들은 오른쪽 문을 당겨 열기 어렵지만, 출입문 중 대다수의 왼쪽은 붙박이로 고정된 상태다.

“빌딩 출입문을 보면 대개 왼쪽이 '고정문'이에요. 오른쪽 문만 열리는데, 들어갈 땐 ‘당기시오’고 나올 땐 ‘미시오’라서, 문을 열고 닫을 땐 그냥 오른손을 써요. 그게 속 편해요. 왼손을 쓰면 저절로 동선이 꼬이거든요.” 취업준비생 김모(25)씨는 지하철 개찰구를 지날 때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 혹은 자판기를 이용할 때 되도록 오른손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한때는 번거로웠지만, 이젠 익숙하다. ‘어차피 배려받지도 못할 거, 적응하는 게 답이다’라는 결론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왼손잡이들에게 ‘ㄱ’자 모양의 일체형 책상 의자는 그야말로 고역이다. 받침이 오른쪽에 달려있어서, 노트 필기를 하려면 몸을 오른쪽으로 비틀어야 한다.


오른쪽 고정형 책걸상에서 힘겹게 노트필기를 하는 모습.


문제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불편함이다. 강의실에서 주로 쓰는 ‘ㄱ’자 일체형 책상의자다. “책상이 대개 의자의 오른쪽 손잡이에 붙어 있어요. 최악이죠. 강의 내내 몸을 틀어 앉아 필기를 하는데, 기본 두세시간을 이런 자세로 있어야 하니, 허리나 등 쪽에 큰 무리가 가죠.”

왼손으로 가위를 사용했을 때엔 칼날이 반대쪽을 향해 종이가 제대로 잘리지 않는다(좌측 사진). 오른손으로 사용했을 때에만 정상적으로 기능한다. (우측 사진)


왼손을 이용해 가위질을 할때, 종이가 잘려나가지 않고 씹히는 모습.


가위는 오른손으로 사용할 때만 제 기능을 하는 대표적인 물건이다. 왼손으로 들면 윗날이 손바닥과 반대쪽을 향하기 때문에 제대로 잘리지 않는다. “대칭형 가위라고 해도 두 손잡이의 크기가 같을 뿐, 안 잘리기는 마찬가지죠. 고깃집에서 고기 자를 때가 제일 고역이에요. '싹둑' 잘리지 않고 ‘질겅질겅’ 씹히면서 찢어져 버리거든요.”

휴대폰 소프트웨어의 조작버튼 중 가장 많이 쓰이는 '뒤로가기' 버튼은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왼손으로 오른쪽에 있는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기는 쉽지 않다.


스마트폰 조작 버튼이나 키보드도 왼손잡이들이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애로사항 중 하나다. '유튜브’나 ‘넷플릭스’ 어플의 경우 주로 쓰는 주요 조작 버튼이 죄다 오른쪽에 있어 손이 작은 사람은 한 손으로 조작이 힘들다. 키보드 역시 ‘엔터(enter)’나 ‘백스페이스(Backspace)’ 등 자주 쓰는 키가 오른쪽에만 있다 보니 왼손잡이는 번거롭다(일부 스마트폰의 경우, 설정을 바꾸면 ‘뒤로 가기’ 버튼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길 수 있다).

소화전 여닫이 손잡이는 오른손을 사용해야만 쉽게 열리는 구조다. 왼손잡이들은 손목을 반대쪽으로 꺾어야만 간신히 열 수 있다.


소화전을 힘겹게 열고 있는 왼손잡이의 모습.


소화전 여닫이는 왼쪽을 향해 파인 홈에 오른손가락을 넣어 힘을 주어야 열리는 방식이라 왼손잡이에겐 결코 쉽지 않다. 왼손목을 반대쪽으로 꺾어 힘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오른손잡이가 열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다. “직접 열어봤더니, 손목에 꽤 무리가 가더라고요. 여닫이 손잡이가 작아서 더 힘들었어요. 차라리 위나 아래로 열리도록 만들었으면 누구나 쉽게 열 수 있을 텐데…”

초밥 정식은 오른손잡이에게 편한 대각선 방향으로 정렬돼 나온다.


왼손잡이는 손을 꺾어 불편한 자세로 먹든지, 주문 시 방향을 바꿔달라고 미리 요청해야 한다.


전 세계인 10명 중 1명이 왼손잡이로 알려졌다. 미국이나 일본에선 왼손잡이용 물건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팔리는 데 반해 국내는 왼손잡이용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왼손잡이가 엄격한 교정의 대상이다 보니 그에 대한 공식 통계조차 있을 리 없다.

지하철 개찰구, 도서관 학생증 리더기 모두 오른손잡이 위주로 설치돼 있다.

김씨는 왼손잡이를 특별하게 보는 시선 또한 불편하다고 말했다. “하다못해 일식집에서도 오른쪽 방향 대각선으로 정렬된 초밥을 먹으려면 팔을 비틀어서 먹어야 해요. 안그래도 서러운데 ‘어? 너 왼손잡이네? 천재겠네!’ 라는 말은 제발 삼가 주세요. ‘왼손잡이들은 창의적이라던데~’하는 말도요. 쓰는 손만 다를 뿐, 천재도 비정상도 아닌 그냥 ‘똑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박지윤 기자
전윤재 인턴기자
서현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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