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사회학이라는 개념이 있다. 19세기 미국에서 시작된 이론으로 서구 사회에서는 전방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건축 도시 선진국가에서는 오래전부터 당연한 개념으로 적용되어 왔다. 건축주가 저층주거지 마을에 높은 오피스를 지으려고 한다. 건축주는 건축가에게 질문한다. “건축가님 내가 이 마을에 다른 건물들 보다 높은 이 건물을 짓게 된다면 내 오피스 맞은편에 사는 고양이를 키우는 80세의 할머니에게는 어떤 영향이 오게 될까요?” 건축가는 대답한다. “네. 만약에 이런 디자인으로 건물을 짓게 된다면 할머니는 그동안 창을 통해서 따뜻한 해를 바라보며 구름을 즐기던 시간을 포기해야 할 것입니다. 할머니를 위해 조금 여백이 있고 조경이 가미된 디자인으로 바꾸고 층고도 살짝 낮추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런 대화가 당연하게 이루어진다. 도시사회학의 관점은 도시 안에 생기는 다양한 층위의 사회문제점을 다루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건축을 계획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들에게는 사회적 약속 또는 양심이나 코드로 적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도시사회학적 관점을 적용하는 경우가 세련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건축 행위가 이루어지면 주민들은 반대시위를 한다든지 민원을 통해 보상을 요구하고 시공자들은 인사를 하러 다니며 민원을 줄이는데 힘을 쓴다. 관할 행정기관의 담당자들은 행정적 범위 안에서 허가를 하는데 그 기준은 법적인 기준이다. 법이 이야기하는 수치에 따라 서류상으로 허가를 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 경관심의 환경심의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문제점과 보완점을 전문가를 통해 적용하며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법적 기준과 심의 기준만을 통과하면 된다는 점이고 이는 사업의 경제성과 속도의 문제와 연관이 있어서 빠르게 해당 상황을 풀어 낼 수 있는가에 집착하게 된다. 사업 주체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곧 경제성이기 때문에 법을 기준으로 한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정성적으로 해당 건축물이 도시에 종합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에 대하여 충분히 고민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지방 도시를 지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이해하기 힘들게 불뚝 서 있는 아파트가 논밭 사이로 우두커니 서 있는 장면은 도시사회학적 관점에서는 난센스다. 어떤 사업주체자가 부가 이익을 얻기 위해 이런 사업을 시작했겠지만 그것을 허가한 행정이나 이를 마치 좋은 주거형태인 양 받아들이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국은 과거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그들은 올림픽 후에 남은 시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면밀히 검토하였다. 그리고 육상과 수영처럼 지역민들에게 필요한 시설은 보전하고 나머지 시설들은 조립식으로 설계하여 다음 올림픽 장소인 브라질로 자재를 수출한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계획과 설계를 진행하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보다 체계적이며 미래를 내다보는 시각과 노력 그리고 실제 지역과 주민들을 애정으로 생각하는 도시사회학적 계획개념을 보다 집중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면 우리 도시의 삶의 질은 보다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법보다 앞서는 것이 인간이며 인권만큼이나 소중한 주거권은 사회에 중요한 보전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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