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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흘림체의 모범”… 보물 되는 정조 왕비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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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흘림체의 모범”… 보물 되는 정조 왕비 글씨

입력
2020.11.18 13:00
수정
2020.11.19 13:36
0 0

문화재청, ‘효의왕후 어필’ 등 5건 지정 예고

18일 보물 지정이 예고된 조선 정조 부인 효의왕후의 한글 글씨. 왼쪽이 '만석군전', 오른쪽이 '곽자의전'. 문화재청 제공

18일 보물 지정이 예고된 조선 정조 부인 효의왕후의 한글 글씨. 왼쪽이 '만석군전', 오른쪽이 '곽자의전'. 문화재청 제공

“한글흘림체의 범본(範本)이라 해도 될 만큼 정제되고 수준 높은 서풍(書風)을 보여준다.”

조선 정조(재위 1776~1800)의 부인인 효의왕후 김씨(1753~1821)의 한글 글씨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현재 국립한글박물관이 책으로 소장 중인 이 어필(왕과 왕비의 글씨)이 드디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효의왕후 어필 및 함-만석꾼전ㆍ곽자의전’ 등 5건을 보물로 지정하겠다고 18일 예고했다.

지정 예고 대상은 우선 효의왕후 한글 글씨가 담긴 서책 1권과 상자 1개다. 효의왕후는 조카 김종선에게 중국 역사서인 한서(漢書)의 ‘만석군석분’과 당나라 역사책 신당서(新唐書)의 ‘곽자의열전’을 한글로 번역하게 한 뒤 그 내용을 1794년(정조 18) 필사했다. 이 ‘만석군전’ㆍ‘곽자의전’의 본문이 그와 사촌오빠 김기후가 각각 쓴 발문과 더불어 ‘곤전어필(坤殿御筆)’ 제하 책에 담겼고, 책은 오동나무 함에 넣어져 보관돼 왔다.

‘만석군전’은 한나라 때 인물 석분의 일대기다. 벼슬길에 나아가서도 사람들을 공경하고 예의를 지킨 데다 자식들을 잘 교육한 덕에 아들 넷 모두 높은 관직에 올라 녹봉이 만석(萬石)에 이를 정도로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내용이다. ‘곽자의전’은 당나라 무장 곽자의가 안녹산의 난을 진압하고 토번(오늘날의 티베트)을 치는 데 공을 세워 분양군왕(汾陽郡王)에 봉해졌다는 이야기다. 조선 시대에 곽분양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곽자의는 노년에 많은 자식을 거느리고 부귀영화를 누린 인물의 상징이다.

효의왕후의 한글 글씨가 담긴 책 겉면과 책을 보관하는 오동나무 함. 문화재청 제공

효의왕후의 한글 글씨가 담긴 책 겉면과 책을 보관하는 오동나무 함. 문화재청 제공

효의왕후는 발문에 ‘충성스럽고 질박하며 도타움은 만석군을 배우고, 근신하고 물러나며 사양함은 곽자의와 같으니, 우리 가문에 대대손손 귀감으로 삼고자 한 것’이라고 필사 이유를 밝혔다. 친정 가문의 평안과 융성을 기원한 것이다.

조선 왕후가 역사서 내용을 필사하고 발문을 남긴 사례는 아주 드물다는 게 문화재청 설명이다. 효의왕후 어필이 보물로 지정될 경우 2010년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보물 제1627호)에 이어 왕후 글씨로는 두 번째다.

글씨 자체도 귀중한 자료다. 문화재청은 “효의왕후 어필을 통해 왕족과 사대부들 사이에서 한글 필사가 유행하던 18세기 문화를 엿볼 수 있고, 당시 왕실 한글 서예의 면모도 확인할 수 있다”며 “제작 시기, 배경, 서예가가 분명해 조선 시대 한글 서예사의 기준작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의의”라고 평가했다.

보존 상태도 좋다. 함 겉면에 새겨진 문구 ‘전가보장(傳家寶藏ㆍ가문에 전해 소중하게 간직함)’, ‘자손기영보장(子孫其永寶藏ㆍ자손들이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함)’은 가문 대대로 전래됐다는 역사성을 증명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18일 보물 지정이 예고된 고성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 높이가 10m가 넘는 대형 불화다. 문화재청 제공

18일 보물 지정이 예고된 고성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 높이가 10m가 넘는 대형 불화다. 문화재청 제공

이번에 함께 보물 지정이 예고된 ‘고성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 및 함’은 1808년(순조 8) 화승 18명이 참여해 제작한 것으로, 화폭 20폭을 붙여 높이 10m 이상 크기로 만든 대형 불화다. 석가여래삼존과 석가의 제자인 아난존자ㆍ가섭존자, 부처 6존으로 구성돼 있고,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영산회 장면이다. 화기(畵記)에 ‘대영산회(大靈山會)’가 적혀 있다.

전반적으로 18세기 전통 화풍을 계승하고 있지만 색감, 비례, 인물 표현, 선묘 등은 19세기 전반기 화풍이어서 과도기적 양식을 보여준다는 게 문화재청 분석이다.

이번 지정 예고 대상에는 경남 하동 쌍계사가 소장한 목판 3건도 포함됐는데, 문화재청이 비지정 사찰 문화재의 가치 발굴과 체계적 보존 관리를 위해 시행하는 ‘전국 사찰 소장 불교문화재 일제조사’를 통해 발굴해 낸 유물이다.

18일 보물 지정이 예고된 선원제전집도서 목판. 문화재청 제공

18일 보물 지정이 예고된 선원제전집도서 목판. 문화재청 제공

예고 대상 중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른 ‘선원제전집도서 목판’은 지리산 신흥사 판본(1579)과 순천 송광사 판본을 바탕으로 1603년(선조 36) 조성된 목판으로, 총 22판이다. 승려 115명이 승려가 제작에 참여했다.

‘원돈성불론ㆍ간화결의론 합각 목판’은 고려 승려 지눌(1158~1210)이 지은 원돈성불론과 간화결의론을 1604년(선조 37) 지리산 능인암에서 판각해 쌍계사로 옮긴 불경 목판으로 총 11판이다. 병자호란(1636) 이전에 판각된 관련 경전으로는 유일하게 전해지는 목판이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은 1611년(광해군 3) 지리산 능인암에서 판각돼 쌍계사로 옮겨진 불경 목판으로 총 335판의 완질이 전래되고 있다. 1455년(세조 1)에 주조한 금속 활자인 을해자(乙亥字)로 간행한 판본이 저본이다. 조성 당시 역사ㆍ문화적인 시대상을 조명할 수 있게 해 주는 기록 유산이다.

문화재청은 예고 기간 30일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예고를 확정한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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