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지도자

입력
2020.11.24 04:30
26면
0 0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미국 텍사스주 엘매소에서 총기 사고가 발생한 지 이틀 뒤인 지난해 8월 5일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CNN 방송에 출연해 가족을 잃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며 "당신이 잃은 가족이 그래도 당신과 늘 함께한다"고 말하고 있다. CNN 유튜브 캡처

미국 텍사스주 엘매소에서 총기 사고가 발생한 지 이틀 뒤인 지난해 8월 5일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CNN 방송에 출연해 가족을 잃은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며 "당신이 잃은 가족이 그래도 당신과 늘 함께한다"고 말하고 있다. CNN 유튜브 캡처

미국 주요 언론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승리를 확정 보도하던 날,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동료들의 업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대선 개표 초·중반엔 휴가를 내고 죽음의 문턱에서 힘겨워하던 아버지의 병상을 지켰다. 담도에서 처음 발견된 암 덩어리가 복막으로 전이돼 장기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놀랍도록 의연했던 아버지는 울먹이는 나를 오히려 달랬다.

마음을 추스르고,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 연설을 뒤늦게 접했다. 미국이 세계 최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병국으로 전락한 시기에 국정을 맡게 된 바이든 당선인의 연설은 승리의 기쁨보다 당면 과제 해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무엇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그는 2015년 뇌종양으로 사망한 장남 보 바이든 전 델라웨어주(州) 법무장관을 언급하면서 "코로나19로 생명을 잃은 많은 미국인과 유족들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선을 향한 열망으로 국민의 생명과 경제를 맞바꾸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치유와 통합의 연설이었다.

사실 비극적 가족사를 극복한 바이든 당선인에게는 '공감과 치유의 리더'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곤 한다. 상원의원에 처음 당선된 29세 때 첫 번째 부인과 13개월 된 딸을 잃었고,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로 여겼던 장남을 5년 전 앞세운 경험이 있는 그에게 위로를 구하는 이들이 적잖다. 지난해 8월 증오범죄 성격의 텍사스주 엘패소 총기 난사 사고 직후 CNN방송은 그를 인터뷰했다. 그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당신 영혼의 일부를 도려내는 이 고통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싶겠지만 시간은 많이 걸리더라도 먼저 떠난 가족들을 생각할 때 눈물 대신 미소가 지어지는 때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위로했다. 45만 조회수를 넘긴 관련 유튜브 영상에는 “이것이 그가 승리한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슬픔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소중하다. 모든 존재는 소중하고 아름답다. 사랑을 나누고 증오를 몰아내자”와 같은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나 역시 그의 말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는 "장례는 사랑하는 사람의 유산과 성취가 그와 함께 죽지 않았음을 감사할 수 있게 돕는,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절차"라고 했다. 또 "죽음을 이야기할 때 통계가 아닌 우리가 누구이고, 그들이 누구인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연방대법관이 생애 다섯 번째 암 투병 사실을 공개한 지난 8월, 이 칼럼에 그의 암 재발과 아버지의 암 투병 사실을 '긴즈버그의 암 재발이 가르쳐 준 것'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적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아버지가 지인에게 전송한 “우리 애가 쓴 칼럼이 독한 항암제와 싸워서 기필코 이기겠다는 용기를 갖게 된 또 다른 이유가 됐다”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발견하고 한참을 목놓아 울었다.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26만명을 넘어 너무 늦은 시점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사실이 그래서 반갑다. 인류애를 지닌 지도자, 바이든 당선인의 건승을 기원한다.


김소연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