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17일 '김해신공항 백지화' 결론을 내렸다. 검증위 출범 11개월 만이다. 검증위는 "동남권 관문 공항으로서 김해신공항 추진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김해신공항을 그대로 추진할지, 다른 공항을 선택할지는 정부의 권한"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여권은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기정사실로 못박았다.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울산·경남(PK) 지역의 숙원이다.
검증위 결론의 요지는 '김해신공항이 동남권 관문공항으로 최소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되나, 수요·환경 등 미지의 변화에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안전성·경제성 등에서 결정적 하자는 당장 없지만, '미래'를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로 4년5개월 만에 정부의 국책사업 추진 약속을 뒤집은 것이다. 김해신공항 추진을 결정한 건 박근혜 정부였다.
동남권 신공항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띄웠고, 이후 정부 용역 7번, 추진 계획 백지화 3번 등 정권마다 부침을 겪었다. 수조원 대의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지역 거점 공항을 '선거 득표 수단'으로 보는 정치권의 인식 탓이다. 여권의 가덕도 신공항 몰아가기 역시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직결돼 있다는 의혹이 무성하다.
검증위 “절차적 문제 있고, 자료 부실했다” 결론
김수삼 검증위원장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김해신공항 계획은 상당부분 보완이 필요하고 확장성 등 미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계획 폐기를 주문했다.
검증위는 크게 두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우선 "안전, 시설운영ㆍ수요, 환경, 소음 분야에서 상당 부분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2018년 12월 김해신공항 추진 계획 확정 당시 정부가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사업타당성이 의심된다는 취지였다. '절차적 문제'도 들었다. 안전을 위해선 김해신공항 부지 주변의 산을 깎아야 하는데, 부산시와 관련 협의를 생략했다는 것이다.
수조 원 사업 뒤집기엔 의아한 근거들
검증위는 동남권 관문 공항의 안정적 운영 조건인 '연간 3,800만명 수요'를 김해신공항이 감당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공항 주변에 추가로 사용 가능한 부지가 없어 향후 활주로 추가 수요가 있어도 확장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나중에 공항 이용 수요가 늘 것'이라는 불투명한 전제에 기반한 결론인 셈이다. 검증위는 수요 증가 예측에 대한 근거를 대진 않았다. 김수삼 검증위원장은 "PK가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인천국제공항도 세 번째 확장을 했다" 등 우회적 답변만 내놓았다.
'부산시와 협의가 없었다'는 지적도 수조 원대 국책사업을 뒤집는 탄탄한 근거로 보긴 어렵다. 정부의 의지가 있다면, 사후 협의· 조율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검증위는 김해신공항의 경제성이나 안정성 등 핵심 부문은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특히 경제성은 검증 항목에 아예 없었다.
돌고 돌아 원점… '공항 정치' 비판
여권은 곧바로 후속 작업을 시작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후속 조치 계획을 면밀히 마련해 동남권 신공항 추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동남권 관문공항 추진을 위한 긴급 대책회의'를 주재하면서 "부·울·경 시·도민의 오랜 염원인 가덕도 신공항 가능성이 열렸다"며 "합법적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거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검증위가 김해신공항에 부적격 판정을 내린 것일 뿐인데도, 여권이 별다른 공식 절차 없이 '가덕도 신공항'으로 질주를 시작한 것이다. 새 부지 선정을 위한 경제성·안정성 평가를 생략하겠다는 기세다. 민주당은 이르면 다음주 중 가덕도 신공항 속도전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할 준비도 하고 있다.
공항 건설을 자체 효용으로 판단하지 않고 정치적 셈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정치권의 구태다.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PK 민심 포섭을 위해 여권이 가덕도 신공항에 속도를 내는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국민의힘도 여권의 행보에 반대하지 못하는 이유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부의 정책 일관성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새로운 공항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면 가덕도 신공항에 대한 강구를 나름대로 적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수삼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여러 사회적, 정치적 압박도 받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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