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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EP 출범, 자유무역 진영의 국지적 승리

입력
2020.11.17 18:00
수정
2020.11.17 18:0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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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RCEP 통해 반미에너지 결집 어려워
RCEP와 CPTPP, 함께 무역자유화 견인
일본, 정치적 부담 줄자 RCEP 최종 서명


문재인 대통령과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15일 청와대 본관에서 화상회의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 및 협정 서명식에서 서명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15일 청와대 본관에서 화상회의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 및 협정 서명식에서 서명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호주, 뉴질랜드 15개국 정상들이 지난 15일 화상회의를 통해 세계 최대규모의 자유무역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서명했다. 이로써 세계 경제의 약 30%를 차지하는 '메가-FTA'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2012년 16개국이 협상을 시작했던 RCEP는 작년에 인도가 국내산업 피해 문제를 이유로 불참을 선언하면서 RCEP15이 되었다.

RCEP15의 출범은 미중 무역전쟁과 보호주의에 맞선 자유무역 진영의 국지적 승리(?)로 해석된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대중 디커플링 압박을 ‘새로운 동맹 맺기 전략’으로 되받아친 모양새다.

RCEP 내부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거대한 네트워크(그물망)를 한 나라가 주도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네트워크의 절점(행위자)을 노드(node), 노드끼리의 연결선(연계망)을 링크(link)라 한다면 RCEP의 노드는 15개국 정부이고 링크는 각 노드 간 양자관계의 총합이다. 문제는 이 노드 중에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RCEP가 중국 주도의 네트워크가 되려면 미중 패권경쟁하의 중국이 이들 노드들을 움직여 반미 에너지를 결집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럴 만한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이들 나라에 구심력을 행사하려면 경제적 유인책 외에도 리딩 노드(leading node)로서의 ‘권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권위란 무엇인가? 권위는 한 구성원의 권력 행사에 대한 나머지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동의와 인정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권위란 특정 노드에 대한 구성원들의 경험과 인식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은 RCEP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편이었다. 예를 들어 2012년,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밀어붙이며 대중 고립정책을 강화하자 중국은 아세안 국가들과 함께 RCEP 협상의 개시를 이끌어내는 적극성을 발휘했다. 일본이 주창했던 '아세안+6(한·중·일·인도·호주·뉴질랜드)' 지역통합안을 중국이 파격적으로 수용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중국이 대외 정책의 무게 중심을 일대일로(一帶一路)로 옮겨가면서 RCEP는 방치되었다. 최근 미국과의 대결이 본격화되자 중국이 그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면서 이번의 공식 서명을 적극 이끈 셈이다. 일본의 경우 미국을 의식해 비시장경제인 중국과의 FTA를 사실상 맺게 된다는 사실 때문에 소극적이었지만 최근 아베의 사임과 트럼프의 재선 실패로 RCEP 서명에 따른 정치적 부담이 줄어든 상황이다.

글로벌 통상환경은 오늘날 선진국들, 특히 미국과 EU가 국내 행위자들의 선호를 중시하면서 내부 노드(예를 들어 노조, 농민, 시민단체 등)와의 링크를 강화하는 추세다. 이는 내셔널리즘이 인기를 누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결과 보호주의의 확산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RCEP 출범은 보호주의의 높은 파고를 넘고자 하는 아·태지역 15개국의 여망을 담고 있다. 아직은 경제 자유화의 정도가 낮고 노동이나 환경, 지식재산권의 보호나 국영기업에 대한 실효적 합의가 없어 ‘낮은 수준의 무역협정’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이는 시간을 두고 서서히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부분들이다. 특히 일본과 호주 등 RCEP 회원국 중 7개국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의 핵심 멤버들이다. RCEP와 CPTPP가 서로 이끌고 보완하면서 아·태지역, 나아가 글로벌 자유무역의 버팀목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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