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련?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엄마는 대학에 붙고도 가지 못했다. 그 시절 딸들이 다 그랬듯 딸이란 '살림 밑천'이었으니까. 엄마 형제 중 대학을 나온 건 유일한 아들인 막내 외삼촌뿐이다. 삼촌이 유별나게 똑똑해서 누나들을 제치고 홀로 대학생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떤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그에게만 주어졌던 것은 확실하다.
엄마보다 30년 늦게, 그것도 형제 없이 외동딸로 태어난 덕에, 나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엄마는 객지생활을 하는 내게 한 달에 한 번씩 택배를 보냈다. 제철 과일과 김치 같은 것들이야 그랬다 해도, 남달랐던 건 최신 영화와 문학 소식을 담은 신문 스크랩들이었다.
처음에야 영화나 문학 같은 것에 정신 팔린 딸이, 혹시라도 잘 모르고 놓쳤을까봐 부쳐주신 줄로만 알았다. 대학에 온 뒤 나는 엄마가 모르는 세계를 알게 됐고, 그것들과 때론 사랑에 빠졌다. 엄마가 그런 나를 응원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깨달았다. 어쩌면 엄마의 신문 스크랩은 어느 순간 자기보다 멀리 나아가버린 자식을 이해하기 위한 매일의 노력일 수 있다는 것을. 정말 나중에야 깨달았다.
자음과 모음 2020 가을호에 실린 박서련의 단편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속 엄마 또한 그렇다. 열두 살 난 아들을 둔 주인공은 “아이의 현재에는 당신이 열두 살이던 시절의 세계에는 없던 것들이 아주 많”다는 것을 이해하는 엄마다. 아이와의 소통을 위해 자기가 직접 영어 공부하는 것도 마다 않고, 엄마의 외모도 아이들 사이 권력이 된다는 말에 외모 관리도 철저히 한다.
아무리 그런다 한들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말을 듣게 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아이가 게임을 잘 못해 친구를 못 사귄다는 말이 발단이었다. 게임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주인공은 아이에게 게임 과외 선생을 붙여주는 걸 넘어 직접 게임을 배워보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시작한 게임 공부인데 주인공은 의외의 재능을 찾는다.
“제가 저희 애보다 잘할 수 있을까요?”라던 주인공은 금세 아이가 동경해마지않는 아이의 친구보다도 게임을 잘하게 된다. 게임 좀 한다고 으스대던 그 친구 녀석을, 아이를 대신해 “완전히 발라버린”다. 이제 싸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아이를 위한 싸움’을 넘어 ‘느그 엄마’를 욕으로 쓰고 여성혐오와 성희롱이 난무하는 게임 세계와의 한판 승부. 소설은 엄마이자 게이머, 동시에 혐오의 언어가 난무하는 게임 세계와 맞붙는 한 여성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해낸다.
엄마보다 더 긴 가방끈을 가졌다고, 사회적으로 더 성공했다고, 공개적인 지면에다 “공부란 자신을 향하는 것인데 그걸 모르는 어머니가 안타깝다”고 했던 어느 한 중년 남성 PD에게 꼭 이 소설을 건네주고 싶다. 어쩌면 당신 엄마는 당신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다. 그 기회를 그저 당신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양보했을 뿐. 그게 이해가 안 된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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