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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정확한 각도로 찌르는 송곳 같은 소설들

입력
2020.11.17 04: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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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박민정 '바비의 분위기'

편집자주

※ 한국일보문학상이 53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박민정 작가. 문학과지성사 제공 ⓒ김보리

박민정 작가. 문학과지성사 제공 ⓒ김보리


박민정의 소설집 '바비의 분위기'가 2020년 여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우선 2009년에 등단한 이후 약 십 년 동안 한국사회의 청년 세대와 여성들이 놓인 정치, 젠더, 경제, 역사적 조건을 꾸준하게 탐구해온 소설가의 세 번째 소설집이라는 성취다.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버닝썬, N번방 사건 등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신체가 어떻게 취급, 교환되는지 적나라하게 목도한 우리에게 제때 도착한, 날카로운 문학적 기록이라는 사실이다. '바비의 분위기'에는 2017년 여름부터 2019년 가을까지 발표된 소설들이 묶여 있다. 그러나 이 송곳 같은 소설들은 올 한 해를 되돌아보는 이 시점의 한국 사회를 정확한 각도로 깊이 찌르고 있다.

“스마트폰은 이제 사람들의 육체 일부가 되었다”는 시대적인 통찰이 그 바탕에 있다. ‘모르그 디오라마’, ‘세실, 주희’, ‘바비의 분위기’의 기본적인 배경은 여성이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유구한 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회다.

이 소설들은 스마트폰 카메라, 웹툰 산업 등 매체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폭력이 얼마나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그러한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우리의 삶과 관계와 언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짚어낸다. “새로운 매체에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는 ‘바비의 분위기’ 속의 말은 지금 여기 박민정의 소설이 가진 의미이기도 하다.

일상에 촘촘하게 스며든 성 착취 구조에서 ‘평범한 여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언제든 쉽게 신체가 불법 촬영, 유포되는 잠재적인 피해자가 된다. 평범한 여학생은 그녀를 짝사랑해왔던 남학생에게 아이디를 해킹당한 뒤 “고작 이렇게 내 손에 쥐일” 여자가 되어버리고, 친구와 미국 여행 중 우연히 들렀던 펍은 포르노 사이트에 얼굴이 올라가는 범죄 현장이 된다.



박민정의 소설은 이러한 양상을 첨예하게 고발하는 데서 더 나아가, 19세기 프랑스의 시체공시소, 전후 일본의 히메유리 학도대 등 현상의 근원에 있는 사건들과 연결한다. 그로써 젠더 폭력의 구조와 역사적인 계보에 대한 사유를 폭넓게 확장한다.

‘신세이다이 가옥’,‘숙모들’,‘천국과 지옥은 사실이야’는 이러한 폭력의 지형도를 한국의 가족사와 연결하며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가고 있다. 해외로 입양된 딸, ‘숙모’라 불리는 중년 육아 노동자와 여성 조카,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코피노 등 가부장제의 ‘공식’에서 빗겨나 있는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박민정의 시선은 이들을 안타까움이나 슬픔이라는 정서로 휘감지 않는다. 대신 입양과 낙태의 성차, 강남 아파트촌의 부동산 역사, IMF 경제 위기, 한국 남성의 해외 성 범죄 등 구체적인 정치, 경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냉철하게 직시한다. 이 냉철한 시선을 경유한 한국 사회가 얼마나 복잡한 모순 속에 있는 뜨거운 현장인지 알게 하는 것. 그것이 박민정 소설의 고유함이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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