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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가는 경찰만 있다고요? 손 잡아주는 경찰도 있어요"

입력
2020.12.08 16:00
수정
2020.12.0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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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남부서 황진희 경위...학대예방 전도사로 불려
가정폭력 발생하면 피해자뿐 아니라 가족 모두 구해

황진희 대구 남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위가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 때 사용한 피켓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황진희 대구 남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위가 아동학대 방지 캠페인 때 사용한 피켓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대구 남부경찰서 황진희(사진ㆍ46) 경위는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출동할 때면 종종 가해자들로부터 "왜 남의 집안 일에 참견이냐"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학교폭력 사건을 맞닥뜨릴 때도 마찬가지다.

황 경위는 "피해 학생 부모 가운데 ‘'내 자식은 내가 알아서 한다'며 도움을 거부할 때가 있다"며 "부모가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폭력 위험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 중에서도 학대예방을 전담하는 경찰관(APO)이다.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들과 여성, 노인들을 보호하고 폭력이 재발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또 학대 위험이 감지되면 적극 개입한다. 황 경위의 손을 거쳐 학대에서 벗어난 폭력 피해자는 500명이 넘는다. 그가 지금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인원은 20명이 넘는다.

올 2월 초 황 경위는 당직근무 중 '학생이 자살소동을 벌인다'는 112신고를 접수 받았다. 곧바로 현장으로 뛰어 나갔다. 난동을 부린 학생은 황 경위가 학교 주변에서 함께 학대방지 캠페인을 했던 아이였다.

그는 기억을 되살려 학생 이름을 불렀고, 아이는 깜짝 놀라 뒤돌아봤다. 이어 "배고프지? 자장면 먹으러 가자"는 말로 안심시킨 뒤 조금씩 접근하며 잽싸게 안아 몸을 굴렸다.

3시간 넘게 계속된 자살소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황 경위는 "캠페인을 할 때는 마냥 밝은 표정이었는데 오랜 시간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견디지 못해 자살을 결심했다 하더라"며 "학대의 시작은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조차 벗어날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진희 경위는 가정폭력 현장과 마주치면 피해자 구출에 그치지 않고 항상 구성원 전체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는 3년 전 술에 중독된 아버지 밑에서 돌봄을 받지 못해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3형제를 만났다. 곧바로 형제들을 아버지와 분리시켰다. 하지만 가족 모두 지자체, 사회복지기관 등과 연결해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3형제를 도울 수 있는 독지가를 찾는데 두 달 넘게 걸렸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를 사회로 완전히 복귀시키는데는 무려 4년이나 걸렸다. 그 결과 아버지와 첫째는 기술을 배워 취직했고, 둘째와 셋째는 검정고시를 치른 후 대학에 진학했다.

황 경위는 학대예방 경험을 살려 제도적으로 이들 위기 가정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데도 적극 나선다.

그는 지난해 5월 대구시의원을 찾아 '대구시 아동학대 예방 및 보호 촉진에 관한 조례안' 개정을 제안했고, 마침내 조례가 만들어져 지자체와 협업해 아동학대 감시와 신고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황 경위는 "범죄자의 팔목에 수갑을 채워 잡아가는 경찰도 있지만 힘들 때 따뜻하게 손 내밀어 잡아주는 경찰도 많다"며 "우리의 아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한다. 학대 받는 아이가 단 한명도 없는 그날까지 치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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