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아세안·호주·뉴질랜드 등 15개국 참여
경제영토 확장, 신남방정책 가속화
"일본과 FTA 네트워킹 만드는 계기"
한국·중국·일본·아세안 등 15개국에서 참여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협상 개시 8년 만에 출범했다. 전 세계의 30%를 아우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한국은 '경제영토' 확장과 더불어 신남방정책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일본과 첫 FTA 체결 효과 또한 적지 않은 의미로 평가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아세안 10개국(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싱가포르·태국·베트남) 및 중·일·호주·뉴질랜드 15개국 정상은 15일 화상으로 제4차 RCEP 정상회의를 열고 협정에 최종 서명했다. RCEP 15개국의 인구(22억6,000만명)와 명목 국내총생산(GDP·26조3,000억 달러), 무역 규모(5조4,000억 달러) 모두 전 세계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한다.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이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보다 규모가 크다.
통상당국에 따르면 RCEP를 통해 우리나라 자동차 부품과 철강 등의 업종이 수혜를 볼 것으로 점쳐진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은 안전벨트, 에어백, 휠 등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자동차 부품에 대해 최대 40% 관세를 매겼지만 이를 없앴다.
철강 업종에선 봉강, 형강 등 철강 제품(관세율 5%)과 철강관(20%), 도금 강판(10%) 등에 대한 관세가 철폐됐다. 전기·전자 제품 가운데는 일부 국가에서 최대 30%에 달하던 냉장고와 세탁기, 최대 25%였던 냉방기에 대한 관세 문턱이 없어진다. 섬유 등 중소기업 품목과 의료위생용품 등 포스트 코로나 유망 품목도 추가 시장개방을 확보해 수출길이 넓어지게 됐다.
이번 RCEP는 양자 협정은 아니지만 한일 간 처음으로 FTA를 체결하는 효과도 지닌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인도 등 세계 5위 경제 대국과 모두 FTA를 체결하게 됐다. 브라질을 제외하면 10위 경제 대국과도 모두 FTA 체결에 합의했다.
RCEP에서 한일 양국 간 관세 철폐 수준은 품목 수로는 모두 83%로 동일하다. 다만, 수입액으로 보면 한국이 76%, 일본이 78%로 일본이 우리에게 2%포인트 더 시장을 개방했다. 우리나라에선 완성차, 기계 등 주요 민감 품목은 양허(즉시개방) 대상에서 제외하고 개방 품목도 10∼20년간 철폐하거나, 장기간 관세를 유지하다가 감축하기 시작하는 방식으로 보호장치를 마련했다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대신 일본은 김치나 파프리카 등 우리의 수출유망 농산물을 개방에서 제외했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일본과 처음으로 FTA 네트워킹을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해 말 보고서를 통해 "RCEP 발효에 따른 관세 감축으로 한국 경제에 0.41~0.51%의 성장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총인구 14억 명에 달하는 인도가 값싼 중국 제품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해 빠진 건 아쉬운 대목이다.
사실상 중국이 주도하는 RCEP에 한국이 참여하면서 '미중갈등' 속에서 우리 정부 입장이 더욱 난처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향후 CPTPP에 복귀할 가능성도 농후해서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중심 보호무역' 기조를 앞세워 2017년 1월 환태평양경제협정(TPP)을 탈퇴했고 일본과 호주 등 나머지 11개국이 포괄적·점진적이란 확장된 개념을 붙여 2018년 CPTPP를 출범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바이든 차기 행정부가 CPTPP에 재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KIEP는 최근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정책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바이든이 강조하는 동맹국과의 연대 강화, 국제공조 체제 복원 기조에 따라 미국이 주도하는 형태의 CPTPP 확대 또는 제2의 TPP 추진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미국이 CPTTP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참여를 요구할 경우 한국이 미중 사이에 낀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이 한국의 CPTTP 가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일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일단 전문가들은 국익 차원에서 우리가 두 협정에 모두 참여해 실익을 챙길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노건기 산업부 FTA 정책관은 "RCEP와 TPP는 대립하거나 경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며 "우리나라는 개방형 통상국가로, 수출을 해야 먹고 사는 나라인 만큼 우리의 기본 통상정책은 통상 선진화 규범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