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라 볼 수 있었던 ‘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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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라 볼 수 있었던 ‘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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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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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주인공 안은영은 장난감 광선검을 휘두르며 초자연적인 존재에 맞선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한국 사무소가 있는 종로 1가에서 종로 5가까지 한국 영화인들이 요즘 줄 서 있다는 말이 떠돌아요.”

최근 만난 유명 영화 제작자에게 들은 우스개다. 영화를 완성하고도 극장 개봉을 못하는 영화인은 넷플릭스에 판권을 넘기기 위해 줄을 서고, 신작을 구상하는 영화인은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기 위해 종로를 찾는 현실을 빗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가 만들어낸 진풍경이다. 코로나19가 넷플릭스 전성기를 활짝 열어준 셈이다.

넷플릭스가 코로나19 덕만 본 걸까. 그렇진 않다. 지난 9월 공개된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은 넷플릭스의 진정한 힘을 새삼 깨닫게 한다.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괴랄(괴이하고도 발랄하다는 뜻의 신조어)’이라는 수식이 따른다. 그럴 만도 하다. 드라마에선 동상이 뜬금없이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 학교에는 맥락 없이(찬찬히 뜯어보면 의미 있지만) 오리들이 돌아다닌다. 간혹 카메라는 오리의 시선으로 주변을 살핀다. 욕설과 속어가 수시로 나온다. 내용 역시 괴랄하다. 안은영(정유미)은 초자연적인 존재와 현상을 젤리 형태로 볼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이 못 보는 악성 젤리들을 장난감 광선검으로 제거한다. 묵직한 멜로디에 담긴 주제곡 가사는 이렇다. ‘보건~ 보건교사다~ 나를 아느냐~ 나는 안은영~’

이런 내용과 이런 형식에 이런 노래가 어우러진 드라마는 평가가 극단적일 수 밖에. 아니나다를까. 세대별 반응이 엇갈렸다. 주변 40대 이상에게 물으니 “어이가 없어서” “내용 파악이 잘 안 돼서” 1,2회 정도만 보다가 시청을 중단했다는 대답이 주로 나왔다. 20~30대는 “딱 내 스타일”이라며 대체로 높은 점수를 줬다.

세대별 반응은 갈렸지만 ‘보건교사 안은영’은 히트작으로 꼽힌다. 2015년 출간된 동명 원작소설은 드라마가 화제가 되며 3주 연속 소설부문 판매 1위에 올랐다. 공개한 지 얼마 안 돼 제작진이 자축파티를 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B급 감성이 충만한 ‘보건교사 안은영’은 국내 기성 방송사들은 제작할 엄두를 못 낼 드라마다. 특정 연령대 또는 특정 취향을 지닌 이들을 겨냥해서는 광고 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서다. 편성권을 쥔 방송사 중년 간부들이 드라마의 상업적 잠재력을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다양한 볼거리를 갖추면서 한류 시장까지 겨냥하는 넷플릭스이니까 ‘보건교사 안은영’은 만들어 질 수 있었다.

‘보건교사 안은영’만이 아니다. 지난해 첫 선을 보인 ‘킹덤' 시리즈도 넷플릭스이니까 가능했던 드라마다. 조선 궁궐의 암투와 좀비의 결합부터가 낯설다. 올해 공개돼 논란과 화제를 동시에 일으킨 ‘인간수업’도 마찬가지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면서도 성매매를 알선해 생활비를 버는, 두 얼굴의 고교생이 주인공이다. 제작사는 아예 기성 방송사 편성을 단념하고 넷플릭스의 문을 먼저 두드렸다.

콘텐츠 없이 플랫폼은 없다. 플랫폼 없이 콘텐츠가 생존할 수도 없다. 신작 영화들은 코로나19로 관객이 급감한 극장을 찾지 않고, 극장은 새 작품이 적어 호객에 애를 먹고 있다. 넷플릭스는 국내 콘텐츠 생태계를 뒤흔들며 다종다양한 드라마와 영화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관성과 규제에 발이 묶인 기성 방송사들은 극장과 엇비슷한 길을 가게 될 지 모른다. ‘종로 5가’까지 이어졌다는 줄은 더 길어질 듯하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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