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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힘, '뜨거운 난로'

입력
2020.11.13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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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저항'으로 몸값 키우는 윤 총장
반성 않는 권력을 단죄 하고픈? 민심
'경제'보다 '정의'가 차기대선 이슈 될 수도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추미애(왼쪽)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시간이 갈수록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추미애(왼쪽)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연합뉴스


지난 11일 오후 7시, 한국일보 신문국에서는 긴박한 토론이 벌어졌다. 다음 날 독자들에게 배달될 12일 자 신문의 2면 편집 때문이었다. 검찰의 월성원전 폐쇄 관련 수사와 윤석열 검찰총장 부인 회사에 대한 서울지검의 세무자료 획득 등의 기사를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대해서였다. 결론은 ‘靑 향하는 檢 칼끝’ ‘중앙지검, 윤석열 부인 회사 과세자료 확보’라는 제목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쪽으로 모아졌다. 추미애 법무장관을 대리인으로 내세운 여권과 단기필마로 나선 윤 총장의 대결이 시간이 갈수록 (윤 총장의 본심이 무엇이든 간에)차기 대권까지 겨냥한 정치적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토론에 참가하며 2개월 전 한 법무법인 관계자의 전망이 생각났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A로펌의 고위관계자 B씨였다. 그의 얘기 중 흥미로웠던 부분은 윤 총장의 처신에 대한 예상이었다. 당시 사면초가로 밀려 있던 윤 총장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과 관련해 B씨는 ‘당당한 저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구체적 상황을 가정하며, 당당한 저항은 3단계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취지로 얘기했다. 우선 1단계는 추 장관과 여권이 압력을 넣어도 스스로 사퇴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이다. 2단계는 여권이 압력을 넣으면 침묵하지 않고 할 말을 다하는 것이다. 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어 강제로 물러나게 되더라도, 비굴하지 않고 멋있게 그만두는 게 3단계다. 그래야만 본인 위신도 살고, 혹시 찾아올지도 모를 정치적 기회도 얻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정치공학적으만 보면 윤 총장의 정치적 위상 부각은 대권주자로의 변신 가능성에 따른 것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 국민이 국내 모든 정치인 대신 윤 총장에게서만 더글러스 맥그리거의 ‘뜨거운 난로’ 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ㆍ중반을 주름잡은 미국의 행동과학자 맥그리거는 조직관리 원리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뜨거운 난로의 법칙’을 만들었다. 이 법칙은 말 그대로 어떤 조직이든 망하지 않으려면 죄지은 사람을 ‘뜨거운 난로’처럼 혼내줘야 한다는 법칙이다. 난로에 손을 대면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그 즉시 화상을 입는 것처럼, 조직 구성원 누구라도 잘못을 하면 그가 누군지 가리지 않고 즉각 혼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높은 사람이나 우리 편이라고 봐주거나, 죄를 짓고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느닷없이 벌을 주면 죄인이나 주위 사람 모두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조직의 수장이 부하들을 다룰 때 ‘네 편에만 상처를 주고, 내 편은 눈감아 주는’ 방식을 채택하면 그 집단은 오래가지 못한다. 누군가를 내쳤던 논리를 자기에겐 들이대지 않으면 조직은 무너진다. 5,000년 중국 역사에서 최고의 행정가로 인정받는 제갈량이 자식처럼 아꼈던 마속(馬謖)의 목을 벤 것도 이 때문이다.

불행히도 우리 국민 대부분은 역대 어느 정권의 사법체계도 ‘뜨거운 난로 법칙’을 실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폐로 몰린 과거 정권은 물론이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이 정권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정적은 손만 닿아도 타 죽을지언정 우리 편은 아무리 문질러도 멀쩡한 ‘요술 난로’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여권 지지층을 뺀 많은 국민이 윤 총장에 환호하는 건 보수정권을 단죄했듯이 반성하지 않는 지금 권력에도 ‘뜨거운 난로의 맛’을 보여줄 거란 기대감 때문이다.

많은 정치인이 차기 대선의 핵심은 경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표적이고,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들도 그렇게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요즘 추세라면 정의가 핵심일 수 있다. 윤석열 신드롬이 이어진다면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라는 구호 보다는 ‘문제는 정의야, 멍청아!’라는 말에 유권자들이 더 환호작약할지도 모르겠다.

조철환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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