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끝나고 올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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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끝나고 올 봄을 기다린다

입력
2020.11.12 18:00
수정
2020.11.1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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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선
장동선뇌과학 박사

편집자주

그 어느 때보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힐링이 중요해진 지금, 모두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한, 넓은 의미의 치유를 도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자연과 과학, 기술 안에서 찾고자 합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북반구의 식물들은 살아남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살다 보면 좋을 때가 있고 어려울 때가 있다. 햇빛이 풍부하고 따뜻한 여름에는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풍성하게 잎을 피웠다면, 날이 짧고 물이 얼어버리는 겨울에는 불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많이 덜어내야 한다. 식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낙엽을 떨구고 세포벽을 두껍게 만들며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 안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린다.

식물들은 어둠의 시간에 민감하다. 대부분의 식물은 피토크롬(Phytochrome) 이라고 하는 색소단백질을 지니고 있는데, 이 색소단백질은 빛을 흡수하면 상태가 변한다. 상태가 변하는 정도는 무엇보다 빛이 없는 밤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에 민감하다. 그리하여 계절이 바뀌고 어둠의 시간이 늘어나면 식물은 어느 순간 모든 에너지 생산 활동을 접고 월동을 준비한다. 우리도 비슷하지 않은가. 풍요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지만 결핍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분명히 기억이 나기에. 좋았던 일보다는 힘들었던 일들이 영향이 크다.

가진 것이 없을 때 겨울은 더욱더 춥고 길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땅 밑에서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봄만 기다리는 식물들에게도 그러하리라.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응축해 남겨둔 식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홀로 기나긴 겨울을 살아남아야 한다. 만약 식물들도 꿈을 꾼다면, 씨앗 속에 웅크려 겨울내내 식물은 외로이 어떠한 꿈을 꿀까. 다시 피어날 봄의 꿈일까?


눈꽃, Schneeglöckchen (독어), Snow drop (영어), Galanthus nivalis (라틴어학명). 출처 위키원드


식물은 봄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알까. 따뜻함으로 안다. 살이 에는 차가움을 오래 경험한 이는 따뜻함에 목말라 있다. 아주 조금의 따뜻함이라도 힘이 된다. 따뜻함의 반복은 확신을 주고, 그 조금의 따뜻함을 만나 숨쉴 여지가 주어지면 식물은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잎을 피워보고 땅 위로 올라가는 것을 시도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의 가장 마지막에, 그리고 봄의 가장 첫 자락에 피어나는 꽃이 바로 '눈꽃(Snowdrop)'이다. 바깥 세상이 아직 눈으로 덮여 있을지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꽃은 땅을 뚫고 올라와 꽃을 피운다. 그래서 눈꽃의 꽃말은 바로 '희망(Hope)'이다. 겨울은 끝났고, 봄이 올 거라는 희망 하나로 가장 먼저 꽃을 피우기에. 경이롭게도 눈꽃 한 송이가 꽃을 피우면 곧 그 주위에 수많은 눈꽃이 따라서 꽃을 피운다. 땅 속에서는 피어나기 위한 힘든 싸움을 각자 홀로 하지만, 피어나고 나면 모두가 같은 따뜻함을 느끼고 용기를 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식물의 마음은 과학자가 짐작하기 어렵다. 시인이 더 적합하다. 올해 2020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시인 루이스 글릭은 특히 식물의 마음을 상상한 시들을 많이 썼다. 그 중에 눈꽃(Snowdrops)이라는 시가 있다. 너무나 마음을 울리는 시라 과학자가 시인의 마음으로 한 번 직접 번역해봤다:



우리 모두 안에는 봄을 기다리는, 따뜻함을 갈구하는 눈꽃의 마음이 있지 않을까. 다시 한 번 피어나기 위해 도전하는 희망의 씨앗은 어떤 상처 받은 마음 안에도 존재한다.

장동선 뇌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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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선의 치유하는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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