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의 우익 학살 또한 똑같이 비판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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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의 우익 학살 또한 똑같이 비판받아야 한다

입력
2020.11.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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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전남 여수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

편집자주

진보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곳곳을 다니며 역사적 장소와 현재적 의미를 찾아보는 ‘한국근대현대사 기행’을 매주 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한다. 코로나19시대 '의미있는 여행'의 안내자가 되고자 한다.


여순 사건 당시 좌익의 무분별한 학살로 두 아들을 잃었지만, 두 아들을 죽인 범인을 양아들로 삼으며 화해와 용서를 실천한 손양원 목사의 선행을 그린 벽화. 손호철 교수 제공


‘손동신, 순천중학생 18살.’ ‘손동인, 순천사범대학교 기독교학생회장 23살.’

여수공항 근방의 손양원 목사 순교기념관 앞에는 손 목사에 앞서 순교한 두 아들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들은 여순 사건 당시 좌익 학생들에 의해 ‘친미예수쟁이’라고 인민재판에 회부돼 총살형을 당한 비극의 주인공들이다. 일제 하 신사참배에 저항해 감옥을 갔다 왔고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애향병원을 운영하고 있던 손 목사(1902-1950)는 두 아들의 죽음을 사랑으로 갚았다. 진압군이 들어와 아들 살해범을 처형하려는 것을 간곡하게 부탁해 살려낸 뒤 양아들로 삼은 것이다. 곧 이어 한국전쟁이 터졌고, 북한군이 내려오자 주변에서 피난갈 것을 종용했지만 그는 환자들을 버릴 수 없다고 버티다가 북한군에 체포됐고 북한군이 퇴각할 때 처형당했다.

영암의 왕인 박사 유적지 앞에는 북한군과 좌익에 의해 학살 당한 구림교회 등의 장로, 집사 등 교인 80명의 순교비가 있다. 굴비로 유명한 영광의 법성포에서 멀지 않은 염산교회에도 북한군 퇴각 시 학살당한 ‘기독교인순교탑’과 ‘77인 순교기념비’가 있다. 오죽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릉 노암동 야산에는 ‘6·25전쟁 민간인 학살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북한군은 퇴각하면서 우익 인사 100여명을 기찻길 터널 속에 몰아놓고 학살한 것이다. 전쟁 초기 국군이 후퇴하며 좌익 협조 예상자들을 대량 학살한 것을 빼어 닮은 것이다.


친미기독교주의자라는 이유로 여순사건 때 학살 당한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들의 추모판. 손호철 교수 제공


나는 북한군과 좌익의 인민재판과 학살에 대해 반공 교육을 통해 무수히 들어왔다. 그러나 이를 가르쳐온 우파 독재정권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해 왔는가를 알게 되면서, 이에 대해서도 회의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심심하면 “늑대야”하고 소리 지르자 실제로 늑대로 나타나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는, ’양치기 소년 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또 끔찍한 학살들이 이승만정권에 의해 자행됐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좌익에 의한 우익 학살은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이번 답사를 하면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고, ‘좌익의 우익학살’ 역시 따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물론 마오쩌둥이 이야기했듯이, “혁명은 만찬이 아니고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전복하는 폭력적 행위이다.” 즉 먹물들이 카페에서 입으로 하는 ‘카페혁명’과 달리, 진짜 혁명은 피를 흘리고 폭력을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좌익의 표적이 된 우익 중 상당수는 친일 경찰, 악덕 지주 등으로 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중들에게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질러 수많은 민중들을 기아와 고통에 빠트린,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인간들이다.


북한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바뀌자 퇴각하며 우익 인사들을 몰아넣고 학살한 강릉 노암동 터널. 손호철 교수 제공


또 우익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좌익에 의한 군경과 민간인 학살을 비교하면,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질적으로도 악독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부의 조사만 보더라도, 제주 4·3의 경우 토벌대에 의한 학살이 좌익 무장대에 의한 학살의 6배에 달한다.

위에 소개한 여수에서도, 여순 사건 때 훨씬 많은 사람들이 우익에 의해 학살됐다. 영광의 경우 입석리 등에서 보도연맹 등의 학살이 있었고 국군이 불갑산에 위치한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한 ‘대보름작전’을 펼치면서 빨치산은 다 빠져나갔고 용천사 근처에 피난 와 있던 민간인들만 대량학살하고는 ‘빨치산 1000명 토벌’로 허위보고했다. 용천사 산책길 ‘총알바위’의 총알자국들이 이를 증언하고 있다.

1954년 정부가 조사 발표한 '6·25사변 피살자명부'는 민간인 희생자수는 5만9,964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부가 국군 등 우익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조사했을 리 없기 때문에 이는 좌익에 의한 민간인 학살일턴데 그 수를 줄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중요한 비교기준이다. 이 희생자의 숫자는 이승만 정권과 우익에 의한 민간인 학살보다 훨씬 적은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도 좌파의 ‘우익 학살’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지리산 빨치산 남부군사령관이었던 이현상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당적 죄악’이었다. 민간인, 그리고 전투가 아닌 상황에서 포로인 군경을 인민재판이라는 형태로 처형한 것은 옳지 않다. 특히 민중들을 악랄하게 고문한 친일경찰이나 악덕 지주라면 몰라도, 기독교신자라는 이유로 학살을 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누군가를 그가 믿는 종교와 신념 때문에 죽인다면, 공산주의를 믿는다는 이유로 많은 좌파들을 죽인 우파와 무엇이 다른가. 불행한 것은 친일 경찰과 지주의 잔인한 고문과 수탈 등이 좌익들의 이들에 대한 보복 학살을 가져오고, 좌익이 철수하자 우파들이 협력자들이라며 죄 없는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학살의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빨치산이 모두 도주하자 작전 중인 국군이 이곳에 피난와 있던 영광 함평의 주민들을 대량학살한 용천사의 총알바위에는 아직도 총알자국이 선명하다. 손호철 교수 제공


한 마디만 더 첨부하고 싶다. 좌익에 의한 우익 학살도 잊지 말아야 하지만, 현 국면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우익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조사와 반성이다. 후자가 훨씬 규모가 크고 악랄했으며, 전자와 달리 후자는 반공주의 등으로 은폐되어 왔고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익 피해자는 대부분 좌익 피해자처럼 저주당하고 연좌제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애국지사’로 존경을 받아왔다.

나는 ‘좌파에 의한 우파학살’이 지금 현재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더불어민주당으로 상징되는 개혁(자유주의)진영이 ‘목적이 옳으면, 수단은 중요하지 않다’는 ‘개혁독재’의 유혹(소수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입법화하고도 위성정당을 만들어 거대정당의 의석독점을 심화시키는가 하면, 당헌을 깨면서까지 자신들의 잘못으로 공석이 된 서울과 부산시장에 후보를 내기로 한 결정 같은)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법개정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눈치를 보느라고 조국 문제 등에 침묵하다가 위성정당으로 뒤통수를 맞은 정의당 등 진보진영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일가 27명이 좌익에 의해 학살 당했지만, 이들을 용서하고 살린 대한청년단 박남도의 공적을 기리는 공적비. 손호철 교수 제공


‘목적이 옳으면, 수단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는 ‘결과제일주의’, “빨리 혁명과 개혁의 성과를 내야한다”는 조급증이 좌익의 우익학살, 이에 대한 보복으로서의 우익의 수많은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극을 가져왔다. 5·18 광주항쟁이 북한 특공대의 짓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가하면 자신과 다른 입장은 모두 빨갱이라며 척결하려는 일부 극우세력을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터지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킬링필드로 보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몇 사례들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충남 금산군 외부리는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의 고향이다. 해방정국에서 이 마을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지만, 이후에도 이현상을 존경했고 “큰 사람이 나다보니 아랫사람들이 고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옆의 내부리는 ‘우익마을’로 외부리와 갈등을 겪어 왔다. 이현상 가족들은 살해위협에 시달려 북한군이 후퇴할 때 북으로 갔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사살 당한 뒤에도 아들을 기다리다가 1975년 사망했다. 며칠 뒤 묘가 파헤쳐지고 시신의 목과 사지가 잘려 사라진 것을 주민들이 발견했다. 전쟁이 끝난 뒤 20년이 지나도 이념적 증오를 버리지 못하고 누군가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한국전쟁 전후 좌우익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 모두를 함께 추모하는 영암의 ‘용서와 화해의 위령탑’. 손호철 교수 제공


이와 대조적인 ‘용서와 화해’의 사례는 손양원 목사 이외에도 더 있다. 영광은 좌우익 갈등이 심해 학살이 심했던 곳으로 영광군 홍곡리 박남도씨의 일가 27명이 지역 좌익에 의해 반동분자로 몰려 1950년 9월에 희생됐다. 수복 후 마을에 돌아온 대한청년단 박남도는 자기 대에서 악연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해 오히려 복수하려는 사람들을 설득했고 부역혐의자와 빨치산 동조자, 좌익가담자들의 구명에 앞장섰다. 홍곡리 저수지 가에는 호당공원이라는 작은 공원이 있다. 호당은 박남도의 호로 이곳에는 그의 덕을 기리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화순과 영암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지역은 좌우익분쟁이 아주 심했던 곳인데 여기에는 특이한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우익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 그리고 이보다 수는 적지만 좌익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 희생자 모두를 함께 추모하는 합동추모탑이다. 특히 영암의 위령탑은 이름부터가 ‘용서와 화해의 위령탑’이며, 좌우 모두가 ‘역사의 피해자’라고 쓰고 있다. 결국 금산 식의 증오가 아니라 손양원, 박남도, 화순과 영암 식의 (진실규명 이후) 화해가 해법이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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