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범행은 성지건설, 2기는 해덕파워웨이가 먹잇감
두 상장사 '곳간' 삼아서 1조5000억 규모 펀드 유지
"제 2의 성지·해덕 안 나오게 관련자 발본색원 해야"
옵티머스자산운용(옵티머스) 펀드 사기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해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펀드 자금을 끌어 모은 뒤, 실제로는 부실 업체들의 사모사채에 투자하는 식이다. 의아한 대목은 제대로 진행한 사업조차 없는 옵티머스가 어떻게 허위 매출채권 양수도 계약서만 갖고, 3년간 무려 1조5,000억원이 넘는 투자금을 끌어 모았느냐는 점이다. 정ㆍ관계 로비 의혹이 제기되거나, 금융당국의 관리 부실 책임 문제가 거론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하나 주목할 지점은 사업 초반 무렵 옵피머스가 ‘펀드 돌려막기’를 위한 곳간으로 삼은 성지건설, 그리고 해덕파워웨이다. 두 회사는 옵티머스의 성장ㆍ몰락과도 깊이 연관돼 있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등장인물들 간 역학 관계와 수사 무마 의혹, 심지어 조폭 연루 살인 사건에 이르기까지, 옵티머스 사태를 둘러싼 각종 이슈를 파악하기 위한 핵심 고리이기도 하다. 성지건설과 해덕파워웨이, 그리고 옵티머스가 서로를 어떻게 망가뜨려 왔는지를 되짚어 봤다.
옵티머스 펀드 사기의 시초, 성지건설 사건
옵티머스 사태의 시발점은 2017년 초, 네 사람의 만남이었다. 김재현(50ㆍ구속기소) 현 옵티머스 대표와 이혁진(53ㆍ수배 중) 당시 AV자산운용(옵티머스의 전신) 대표, 정영제(57ㆍ잠적) 전 옵티머스대체투자 대표, 당시 골든브릿지 투자센터장이던 유현권(39ㆍ구속기소)씨가 주인공들이다. 4인방이 파트너십을 구축한 뒤 그 해 6월 유씨는 당시 성지건설을 인수하려던 박모(47ㆍ구속기소)씨를 끌어들였고 정 전 대표는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투자금 유치에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이들은 ‘성지건설 자금을 옵티머스 펀드 운용에 쓰자’고 마음먹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 무렵 이 전 대표가 경영권 분쟁 끝에 물러났다. 옵티머스는 김 대표 손아귀에 들어갔고, 옵티머스 펀드 사기의 시초가 되는 자금 융통 구조도 이 전 대표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양수도가 불가능하거나 확정되지 않은 성지건설 등의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마치 적법하게 양수한 것처럼 매출채권 양수도 계약서를 꾸미고, 전파진흥원 등으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하는 식이었다. 김 대표 등은 펀드자금을 공공기관 매출채권이 아닌 박씨가 대표였던 엠지비파트너스의 사모사채 인수대금 등으로 썼고, 이를 또다시 성지건설 주식을 매입하는 데 투입했다.
성지건설 경영권을 장악한 세 사람은 성지건설과 옵티머스, 유씨 소유의 특수목적법인(SPC)들 사이에서 자금을 굴리며 옵티머스 펀드 규모를 키워 나갔다. 이 과정에서 성지건설 명의의 허위 매출채권 양수도 계약서를 계속 만들어내 전파진흥원 등에서 펀드 투자 유치를 이어갔고, 성지건설로부터 직접 펀드 투자금 285억원을 받기도 했다. 또, 성지건설 자금으로 경기 광주시 봉현물류단지 사업 등 옵티머스의 주요 부동산개발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지건설 운영자금으로 펀드를 유지하려던 계획은 얼마 안 가 무너졌다. 김 대표와의 경영권 싸움에서 패했던 이 전 대표가 당국에 민원을 제기하며 ‘반격’에 나선 탓이다. 전파진흥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감사를 받은 뒤 1,060억원 규모의 투자를 철회했고, 옵티머스 측엔 치명타가 됐다. 성지건설마저 옵티머스 측과의 수상한 자금 거래로 ‘감사의견 거절’ 판정을 받아 2018년 10월 상장폐지가 됐다. 옵티머스로선 숨통이 끊어질 지경이었지만 돌이킬 수조차 없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유씨는 펀드 사업에서 뒤로 물러섰지만 2019년 10월 말 박씨 등과 함께 성지건설 횡령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서 구속기소됐다. 김재현 대표 등이 검찰 수사를 피해가긴 했어도, 2018년부터 옵티머스는 이미 무너질 위기에 처했던 셈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옵티머스 2기’ 사기를 꾸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2018년 초부터 손을 잡았던 윤석호(43ㆍ구속기소) 변호사, STX건설 영업이사를 지낸 이동열(45ㆍ구속기소)씨 등을 ‘파트너’로 삼았다. STX건설 매출채권을 이용한 허위 양수도 계약서의 비중을 대폭 늘리고, 투자처를 유씨 소유의 SPC들에서 ‘트러스트올’ 등 이동열씨가 대표로 있는 SPC들로만 바꿨을 뿐 사기 수법은 이전과 동일했다.
절체절명 위기 때 나타난 '새 먹잇감' 해덕파워웨이
그렇다면 성지건설 상장폐지 등으로 발생한 1,000억원대의 ‘펀드 사고’ 금액을 옵티머스는 어떻게 상환했을까. ‘사채시장 자금’을 포함해 여러 출처가 거론되지만, 대표적인 건 코스닥 상장 선박 부품 전문회사인 ‘해덕파워웨이’다. 옵티머스가 성지건설을 대체하는 ‘새로운 먹잇감’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우량기업이었던 해덕파워웨이는 조선업 장기불황 여파로 2018년 초 기업 매각을 결정했다. 곧바로 기업사냥꾼들의 표적이 됐고, 같은 해 4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원장 이모(54)씨가 ‘새 주인’이 됐다. 그러나 박모(사망ㆍ당시 56세) 전 옵티머스 고문이 실질적인 배후였다는 게 정설이다. 박 전 고문은 이씨 명의를 빌려 해덕파워웨이를 인수하기 위해 전주(錢主)들로부터 돈을 끌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자금을 댄 인물 중에는 전국적 규모의 폭력조직인 ‘국제PJ파’ 부두목 조모(61ㆍ수감 중)씨도 있었다. 이와 별개로 ‘개미 도살자’로 불리는 유명 기업사냥꾼 이상필(63ㆍ수감 중)씨나 DJ정부 시절 ‘이용호 게이트’의 주인공 이용호(62) 전 G&G그룹 회장도 공동 경영을 조건으로 각각 투자했다.
박 전 고문이 정확히 언제부터 ‘고문’이라는 직함을 달고 옵티머스와 동업에 나섰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해덕파워웨이 인수 전후 옵티머스 측과 금전거래가 있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실제로 그는 2018년 8월 트러스트올에서 받은 주식담보대출 130억원을 주식 인수대금과 관련한 채무 상환에 쓴 것으로 전해졌다. 그 이후, 해덕파워웨이는 자회사 세보테크와 합쳐 370억원 이상을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했다. 박 전 고문과 옵티머스 사이에 모종의 계약이 있었다고 볼 만한 정황이다.
하지만 ‘성형외과 원장’ 이씨를 앞세운 경영은 순조롭지 않았다. 이용호ㆍ이상필씨 등과의 공동 경영 약속을 지키지 않아 시작된 분쟁 과정에서 2018년 11월 해덕파워웨이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고, 이씨의 수상한 지분 취득 과정이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불거진 게 바로 박 전 고문과 옵티머스 측이 해덕파워웨이를 ‘무자본 인수합병(M&A)’ 하는 방법으로 이를 해결했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자금 흐름이나 인적 구성을 보면, 사실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지난해 2월 옵티머스 측 투자를 받은 화성산업은 이씨한테서 해덕파워웨이 최대주주 자리를 넘겨받았다. 해덕파워웨이 대표이사 자리도 박모(61) 화성산업 대표가 차지했다. 문제는 당시 옵티머스의 화성산업 투자금 출처가 다름아닌 해덕파워웨이 자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A사 돈으로 A사 지분 매입’이 벌어졌을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게다가 해덕파워웨이 사외이사 자리를 윤석호 변호사(옵티머스 이사)의 부인 이모(36) 전 청와대 행정관이 꿰찬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또 △해덕파워웨이ㆍ화성산업 자금이 옵티머스 펀드 돌려막기 용도로 쓰이거나 △해덕파워웨이 거래업체에 옵티머스 펀드 투자를 요구해 이득을 보려 한 정황 등도 있다.
결론적으로 ‘옵티머스와 해덕파워웨이는 공멸한 셈’이라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5월 박 전 고문이 앞서 빌린 주식 인수대금을 갚지 못한 게 갈등으로 번져 조씨한테 살해당하는 사건마저 발생한 뒤, 해덕파워웨이는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옵티머스 주변 관계자는 “워낙 많은 ‘꾼’들이 모여서 서로의 채권을 주장하는 곳이고, 박 전 고문 살해 사건에서 보듯 폭력조직까지 연루돼 버렸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태 이후에도 해덕파워웨이의 극심한 경영권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2018년 11월 거래정지 이후 2년간 주식거래도 하지 못한 채, 다음달쯤 상장폐지 여부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해묵은 의혹들, 옵티머스 수사로 마침표 찍힐까
성지건설과 해덕파워웨이 사건은 옵티머스 사태의 전조(前兆)를 보여줬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성지건설 의혹과 관련해선 2018년 전파진흥원의 수사의뢰로 서울중앙지검이 들여다볼 수도 있었지만 이듬해 무혐의로 종결됐고, 지난해 서울남부지검도 횡령 사건을 수사하며 회사 일부 관계자를 사법처리하면서도 옵티머스 측으로까지 수사망을 넓히진 않았다.
과거 검찰의 사건 처리를 모두 ‘부실수사’로 치부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전파진흥원이 ‘면피성 고발’ 후 소극적 자세를 보였고, 투자금 상환으로 실제 피해는 없었던 점(서울중앙지검) △성지건설 횡령 사건에서 옵티머스 측 책임 유무엔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서울남부지검) 등 고려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를 단초로 삼아 “옵티머스 사태 주범들이 법조계ㆍ금융계 인맥을 활용, 지난 수사들을 막았다”는 일각의 주장이 끊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해묵은 의혹들이 쌓여 있는 만큼, 옵티머스 사태를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도 관련 사건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다. 일단 지난 8월 김재현 대표를 성지건설 인수 당시의 펀드 사기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최근엔 해덕파워웨이를 둘러싼 횡령 사건과 관련, 화성산업 대표 등을 구속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에 앞서 관련 의혹이 불거졌을 때, 검찰이나 금융당국이 옵티머스 펀드 운용의 문제점을 확실히 걸러내지 못한 배경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검찰은 옵티머스 일당이 ‘제 2의 성지건설’, ‘제 2의 해덕파워웨이’로 노렸던 수많은 회사들에 대한 의혹도 낱낱이 파헤친다는 방침이다. 성지건설 사건으로 수감됐다가 올해 보석으로 풀려난 유씨가 김 대표, 윤 변호사 등과 함께 공모한 스킨앤스킨 횡령 사건이 대표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옵티머스 펀드 사기의 공범들은 어떻게든 수사망을 피하고 나면 다음 표적을 찾으려 할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관련자들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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