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줄을 조율하려고 활만 그어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제자를 예뻐해 주시는 인자한 할아버지세요~."
최근 만난 고소현(14)양, 아니 '바이올린 신동'이란 별명을 달고 다니는 바이올리니스트 고소현은 활짝 웃었다. 사실 어린 나이에 유학을 떠나 '현존 최고 바이올리니스트'라 불리는, 그것도 음악계에서 "차갑다"는 평을 듣는 핀커스 주커만(72) 밑에서 공부하는게 쉽지는 않을 터. 혹여 힘들지 않을까 물었더니 전혀 다른 답이 돌아왔다. "새로운 곡을 배울 때면 본인이 직접 수십 분간 연주하며 작품 분위기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정도로 배려가 넘치는 분이세요."
주커만의 교육이 어떠냐 물었더니 "자신만의 음악을 하라고 하신다"고 말했다. 작품 분위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한국에서는 테크닉 중심 교육이 우선이었는데, 주커만 선생님은 곡의 해석과 상상력을 훨씬 강조하시는 편이세요. 악보 마디마다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지 퀴즈를 내는 방식으로 저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려고 하세요."
제발 바이올린만 하지 말라고 제자를 밖으로 내돌리기도 한단다. "제가 한 번 악기를 잡으면 열 시간 정도는 그냥 연습에 빠지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럴 때마다 주커만 선생님은 '연습만 하는 로봇이 돼선 안 된다'며 '연습량을 줄여라' '다양한 사회경험을 하라'고 하세요."
주커만과의 인연은 2016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내한공연을 온 주커만은 같이 연주할 사람으로 고소현을 지목했다. 앙증맞은 에메랄드빛 원피스를 입은 열살 고소현은 주커만과 함께 무대에 올라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했다. 이 장면은 이내 화제가 됐다. 주커만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아예 자기에게 바이올린을 배우라 권했고, 고소현은 미국 뉴욕 맨해튼 음대 프리칼리지에서 주커만의 지도를 받고 있다.
주커만에게 한창 바이올린을 배울 이 시기, 고소현이 한국에 머물고 있는 건 코로나19 때문이다. 지난 3월 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확산하기 직전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가 그대로 발이 묶였다. 갑갑할 수도 있었을 텐데, 덕분에 뜻밖의 경험도 했다. 클래식을 전면에 내세운, 웰메이드 드라마로 호평받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출연한 것. 고소현은 드라마에서도 바이올린 영재 '양지원'으로 등장했다.
고소현은 "버킷리스트 1순위가 사람들에게 클래식의 매력을 전파하는 일이었는데, 드라마 출연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도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극중 지원이는 기죽어 있고 여리지만 나는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사는 것 같다"며 웃었다. 드라마 속 호랑이 엄마와 달리 실제 엄마는 “아무리 연주를 못해도 항상 응원을 아끼지 않는 따뜻한 분"이라고 했다.
네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은 소녀에게 꿈을 물었더니 "우선 세계 3대(베를린ㆍ빈ㆍ뉴욕) 오케스트라와 협주도 하고, 국제 콩쿠르에도 도전하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그런데 시도 쓰고 싶고, 천문학, 심리학도 공부하고 싶으니 어쩌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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