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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룰 도입'... 대기업 기술 털리고 중소기업까지 영향?

입력
2020.11.12 11:00
수정
2020.11.12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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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국회에서 열린 공정경제 3법 입법 현안 공개 토론회에 참석한 정찬영(가운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가 토론회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3일 국회에서 열린 공정경제 3법 입법 현안 공개 토론회에 참석한 정찬영(가운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교 교수가 토론회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하반기 정기국회 최우선 과제로 이른바 ‘공정경제 3법'(공정거래법·상법·금융그룹감독법)을 추진 중이다. 재계는 특히 핵심 조항 중 하나인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기업 옥죄기’ ‘갈라파고스 규제’로 규정하면서 반발하고 있다. 이른바 ‘3% 룰’로 불리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외국 투기 자본이 국내 기업 경영에 깊숙이 관여할 통로가 열려 핵심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3%룰이 도입되면 중소기업 생태계마저 파괴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런 주장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결론부터 요약하면 “과도한 공포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재계 "30곳 중 23곳 이사회 투기자본에 뚫린다"

공정경제 3법 혹은 기업규제 3법으로 불리는 법안의 최대 쟁점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규정한 상법 개정안이다. 현재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이사회(7~9명) 밑에 기업 활동을 감시ㆍ감독하는 감사위원회(이사 중 최소 3명 이상)를 설치해야 한다. 감사위원을 뽑을 때 지배주주(최대주주+특수관계인)는 지분이 아무리 많아도 3% 이상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하지만 지배주주 입김 하에 모든 이사를 선출한 후 이중 감사위원을 뽑는 일괄선출 구조라 감사위원마저 지배주주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에 개정안은 감사위원 중 한 명은 선임 단계부터 다른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고, 이때 지배주주 영향력을 줄이고자 모든 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키로 했다. 기존 일괄선출 구조에서 사문화한 '3%룰'을 복원하는 취지다.


지난 3월 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사옥에서 제52기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사옥에서 제52기 정기 주주총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재계는 “외국계 투기 자본에 이사회 문을 활짝 열어주는 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엘리엇과 칼 아이칸 등 외국계 투기 자본이 국내 기업의 지분을 매입해 자기 사람을 감사위원에 앉힌 후, 해당 감사위원을 통해 기술자료 등을 경쟁사에 넘길 수 있다는 식의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감사위원 분리선출 시 외국인 기관투자자 ‘연합’이 국내 시가총액 30위 기업 중 23곳 이사회에 자신들 입장을 대변하는 감사위원을 진출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의 양향자 민주당 의원은 “(외국 자본이) 대기업보다 내부 방어 시스템이 취약한 중소ㆍ벤처를 노릴 가능성이 크다”고도 했다. 분리선출 적용 대상이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160곳)로 한정되는데, 중소ㆍ벤처기업 ‘위기론’까지 꺼내들어 논란이 됐다.


더 센 3%룰 시행됐던 00~09년, 투기자본의 감사위원 선임 '0'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재계의 우려에 대해 “현실 가능성이 희박한 시나리오를 근거로 공포마케팅을 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감사위원 선임 단계부터 외국계 투기 자본의 접근이 말처럼 쉽지 않다. 상법상 감사위원 선임은 출석 주주의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 국내 기업의 주총 출석률 60%를 기준으로 외국계 투기자본이 자신의 지분을 포함해 30% 이상의 ‘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의결권 행사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12일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인 주주 대부분은 (직접 종목을 고르지 않고 시장지수를 수동적으로 추종하는) 뮤추얼 펀드나 연기금”라며 “이들이나 국내 소액 주주들이 투기자본에 동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이낙연(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9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에 앉고 있다. 오대근 기자

이낙연(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9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자리에 앉고 있다. 오대근 기자


투기 자본 중심의 반(反)경영진 연합이 꾸려져 감사위원 선임까지 성공한다고 해도 이들이 합법적으로 기술을 빼내기는 어렵다. ‘외부’ 감사위원은 3~4명으로 꾸려지는 감사위원회 중 한 명에 불과하다. 현재 구조상 나머지는 지배주주가 선임한 감사위원들이다. 외부 감사위원이 독단적으로 경영진에 “기술자료 공개해라”, “기밀 내놓으라”고 할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경영자 출신의 한 민주당 의원은 “통상 대기업 이사회는 무선인터넷(와이파이)을 차단하고, 이동형저장장치(USB) 사용도 막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며 “게다가 경영진이 감사위원에 기밀자료를 내줄 가능성은 0%”라고 단언했다. 과거 감사위원을 역임한 최운열 전 민주당 의원도 “어떤 감사위원이 영업비밀침해죄로 형사처벌 당할 가능성을 각오하고 기술자료를 요청하겠느냐”고 말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이 처음 도입되는 제도도 아니다. 한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는 “이미 2000~2009년에 1명이 아닌 전체 감사위원을 분리 선출하는 증권거래법이 시행되고 있었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3%룰보다 더 강력한 제도가 이미 시행된 전례가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기간 외국 헤지펀드가 감사위원 선임에 성공한 사례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주요 선진국의 감사위원회 관련 제도. 한국일보

주요 선진국의 감사위원회 관련 제도. 한국일보


민주당, 재계 반발에 '3%룰' 일부 완화 카드 만지작

다만 민주당은 재계 반발을 고려해 '3%룰' 일부 완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를 도입하되,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가 아닌 개별로 최대 3%씩 인정해주겠다는 게 골자다. 가령 지배주주가 15% 지분을 보유하고 특수관계인 A씨와 B씨가 각 5%씩 갖고 있다면, 원안에서는 이들의 총 보유지분(25%) 중 3%밖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하지만 변경안이 확정되면 3명이 3%씩 총 9%까지 행사가 가능하다. 민주당 ‘공정경제3법 태스크포스(TF)’ 관계자는 “재계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100% 부작용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기에 최대한 의견을 반영할 계획”이라며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우선 결론을 내릴 예정”이라고 했다.

박준석 기자
조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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