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집 때문에 온 국민이 불행하다

입력
2020.11.11 18:00
26면
0 0

전주 착한 임대료와 용인 어르신 선행
사람들 서로 배려하며 법 없이 사는데
정치는 국민 편 가르고 갈등 다툼 조장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정부의 새 임대차 법 시행 이후, 전세 대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매매, 월세 건 등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정부의 새 임대차 법 시행 이후, 전세 대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매매, 월세 건 등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아직 살 만한 세상입니다. 우리 가게 집주인도 코로나가 터지니 3개월간 임대료를 인하해줬습니다.”

경기 용인시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강모(40)씨가 점포 주인 어르신(77)에게 월세 10만원만 깎아달라는 문자를 보냈다가 100만원을 생활비로 받았다는 기사에 붙은 댓글이다. 글쓴이는 자신을 대구에서 일한다고 소개했다.

전북 군산시에서 월세 82만원을 내 왔다는 임차인도 건물주가 월세를 반만 보내라는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을 댓글로 공개했다. 임차인은 나중에 자신도 베푸는 건물주가 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전주 한옥마을 건물주 임대인 14명은 지난 2월 임대료 인하 운동의 불을 지폈다. 대통령도 이를 칭찬했다.

물론 착한 임대인이 다수는 아니다. 소상공인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월 임대료가 인하됐다는 답은 5.5%에 그쳤다. 오히려 오른 곳이 더 많다. 그래도 선한 영향력은 확산되고 있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5층짜리 다가구 주택을 갖고 있는 지인은 최근 세입자 4명과 술자리를 함께했다. 그 중에는 10년 이상 쭉 살아온 세입자도 있다. 그 동안 집세가 거의 오르지 않은 게 큰 이유다. 지인은 올 들어 집세를 제때 못받는 경우가 늘었지만 재촉 전화도 하지 않았다. 서로 난처한 상황에서 속이나 터놓고 얘기하자는 세입자의 제안에 지인은 흔쾌히 응했다. 이들은 밤새도록 법과 상관없이 잘 지내자며 의기투합했다.

사실 월세를 받지 못해 보증금까지 다 까먹고도 속앓이만 하는 집주인도 없잖다. 이사비를 쥐여주며 제발 나가 달라고 애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임대인도 국민이다.

전세 품귀와 전셋값 폭등 현상이 7월 말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석 달 가까이 지속되면서 아파트 대신 차선책으로 다세대와 빌라 전세를 찾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사진은 19일 서울 송파구 빌라와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 연합뉴스

전세 품귀와 전셋값 폭등 현상이 7월 말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석 달 가까이 지속되면서 아파트 대신 차선책으로 다세대와 빌라 전세를 찾는 세입자가 늘고 있다. 사진은 19일 서울 송파구 빌라와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 연합뉴스


현장에선 임대차3법에 따라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수 있지만 그냥 시세에 맞춰 보증금을 올려주는 임차인이 많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써도 어차피 나중엔 이사를 가야 하는데 전세 씨가 마르면서 이제 사는 곳을 옮긴다는 건 불가능해졌다. 그럴 바엔 살던 집에서 계속 사는 게 낫다.

최근엔 전셋값이 2억원 이상 오른 곳도 수두룩하다. 집을 사긴커녕 전세를 얻기도 힘들어 결혼도 미룰 판이다. 결혼을 못 하니 아이도 낳을 수 없다. 다세대주택이나 빌라에서 아파트로 옮겨보려던 이들, 서울 입성을 노리던 이들도 집값 폭등과 전세대란에 모두 주저앉고 있다.

집이 있다 해도 행복하지 않다. 거래세(취득세 양도세)와 보유세(재산세 종부세)를 함께 올린 터라 세금 폭탄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팔고 세금 내면 갈 곳도 없다. 사지도 못하지만 매도도 어렵다.

정부는 세상을 임차인과 임대인으로 간단히 나눈다. 임차인은 모두 선한 약자이고 임대인은 악한 강자란 전제를 깔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임대인 중엔 용인 어르신처럼 착한 집주인도 있다. 임차인이라고 모두 약자는 아니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착한 임차인, 악한 임대인 구도로만 세상을 재단하면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다. 자기 집을 갖고 있지만 자녀 교육이나 직장 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다른 집에 세 들어 사는 이들도 많다. 이들은 임차인일까 임대인일까.

100% 백과 100% 흑보다는 51% 백과 49% 흑, 또는 49% 백과 51% 흑인 경우가 더 흔하다. 그런데 머릿속 흑백 이분법을 전제로 한 법만 만든다. 이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정작 그 법이 가장 보호하려 했던 이들이 되고 있다. 국민 10명 중 7명이 부동산 정책에 대해 잘못됐다고 할 정도다.

사람들 사이의 다툼과 갈등을 줄이는 게 정치다. 그런데 정부는 자꾸 국민들을 편을 갈라 싸우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로 힘든데 정치와 정부는 싸움박질과 잘못된 정책으로 국민들을 더 불행하게 하고 있다. 복잡한 부동산 관련 법 규정과 해석을 놓고 정부와 국민이 옥신각신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옛 현인은 정치 중 가장 하수를 백성과 다투는 것이라고 했다. 법령이 늘수록 도둑만 많아진다.

용인 어르신 관련 기사의 한 댓글은 이렇게 적었다. “대한민국은 아직 살 만하다는 결론! 정치만 빼면 왜 아니겠는가.”

[기자사진] 박일근

[기자사진] 박일근


박일근 뉴스1부문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