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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는 것으로 문학을 살아내는 일

입력
2020.11.12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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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편집자주

※ 한국일보문학상이 53번째 주인공 찾기에 나섭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본심에 오른 작품을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김연수 작가. 문학동네 제공 ⓒ이관형

김연수 작가. 문학동네 제공 ⓒ이관형


이렇게 이야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연수의 장편 '일곱 해의 마지막'은 행간을 바라보는 소설이다. 아니, 어쩌면 행간이 전부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행간에서 무수히 삭제된 자음과 모음을 읽어내고, 그 조합된 문장을 통해 방목장 위에 홀로 선 시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야기, 그 마음을 짐작하는 소설. 작가 김연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백석’의 삶과 동일한 방식으로 자신의 소설을 써나갔다. 그에겐 그 방식밖에 없었으리라. 그 방식이 김연수가 오랜 밤을 두고두고 고민한 끝에 만난 ‘백석’의 마음이었으리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백석’의 삶은 대략 이러하다. 시인들의 시인이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쓴 사람이며, 남한에서는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으나 암암리에 많은 사람에게 읽힌 시집 '사슴'의 저자이며, 1950년대 후반 양강도 삼수군 협동조합으로 내려가 양을 치다가 1996년 사망한 사람. 북한의 수령과 같은 해에 태어나 그보다 2년을 더 산 시인.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백석’은 해방 전까지의 ‘백석’, 그가 아직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일 때의 백석이다. 김연수가 우리에게 들려준 ‘백석’은 그 이후의 ‘백석’, 쓰고 싶었고, 또 실제로 쓰기도 했지만, 결국엔 쓰지 않는 것을 선택한 ‘백석’의 이야기이다. 1956년부터 1962년까지의 백석.

소설 속 ‘백석’은 매번 갈등하고 겁을 집어먹고 모욕을 당한다. 체제에 순응하는 방식으로라도 글을 써서 목숨을 부지하고 가족을 지키고자 한다. 한때는 친구였으나 지금은 권력자가 된 작가동맹 위원장에게 사정을 부탁할 마음을 먹기도 하고, 자백위원회에 나가 ‘혹독한 자아비판과 상호 비판을 거치며 개선의 여지를 인정’받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또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연수가 그린 ‘백석’의 시는, 그의 글은, 거기까지이다. 실제로 백석은 1962년 이후 아무런 글도 발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 그는 쓰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인가? 김연수가 그린 ‘백석’에 따르면 그는 산수면에서, 그 불행의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불행과 시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자신의 불행을 생각하면서 쓰는 시는 더욱더 불행해지리라. 백석은 자신이 사랑했던 시를 지키기 위해서 거기에서 그만둔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그것이 김연수가 백석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나는 맨 처음, 이 소설이 행간을 바라보는 소설이라고 썼다. 하지만 또 이렇게도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시인이 들고 있는 ‘카바이드 불’에 대한 이야기라고. 삼수군 씨암양 분만실 앞에 작은 불빛을 들고 서 있는 시인의 이야기. 아무리 눈보라가 몰아쳐도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의 이야기. 쓰지 않으면서 시를 쓰는 이야기. 김연수의 장편이 그토록 오래 시간을 지나 우리 앞에 도착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기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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