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가 ‘죽은 김혜수’를 본다. 죽어 있는 자신을 보며 그는 생각한다. ‘오래 있었던 것 같은데. 누가 죽어 있는 나를 좀 치워주지, 좀 치워라도 주지.’ 잠을 설치다 악몽에서 깨어난 김혜수는 생각한다. ‘내 마음이 죽어 있구나.’
2012년쯤이었다. 평소 꿈을 잘 꾸지 않던 그는 1년 넘게 꿈을 꿀 때마다 똑같은 악몽을 꿨다. 최동훈 감독과 흥행작 ‘도둑들’을 찍고 난 뒤였다. 사업하던 어머니가 딸 이름으로 엄청난 빚을 졌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 빚 갚느라 그간 모은 돈을 쏟아부었다. 자신도 모르게 무너진 자신의 삶을 보며 ‘왜 나는 아무 것도 몰랐을까' 자책했다. 그 상태로 드라마 ‘직장의 신’을, 영화 ‘관상’을 촬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 김혜수는 한 단계 도약한 연기로 절정의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있었다.
김혜수가 보낸 고통의 시간이 세상에 알려진 건 그로부터 7년 뒤. 지난 6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에게 그 시간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목소리는 해맑았다. “극복할 여력은 없었어요. 그냥 내버려 둘 수밖에요. 원하진 않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죠. 현실적으로 해야 할 것들은 해야 하고요. 조바심이 들어올 공간이 없었어요.”
신인 감독 박지완의 영화 ‘내가 죽던 날’(12일 개봉)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김혜수는 그 때 그 악몽을 꾸던 시간을 떠올렸다. “마음에 쏙 들어왔어요.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어요. 만나보지 않아도 아는 연대감 같은 것 말이에요. 제가 위로 받았듯, 관객도 위로 받았으면 해요. 그게 이 영화의 목적이고 의미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화는 증인 보호 차원에서 외딴 섬으로 보내진 고교생 세진(노정의)이 유서 한 장 남기고 사라지면서 시작한다. 김혜수가 맡은 형사 현수는 한쪽 팔 마비에 이혼 소송까지 벼랑 끝에 몰린 사태에서 세진의 행적으로 추적하게 된다. 그러다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된다.
김혜수는 그간 연기하는 캐릭터와 자신을 분리했다. 이번엔 오래 전 악몽 속에서 죽어 있던 자신을 떠올리며 현수 안으로 들어갔다. “현수가 처한 상황을 설명으로 보여주기보다 아주 직접적인 감정을 개입시키면 어떨까 싶었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수정해 자신의 경험을 반영했다. 김혜수였기에 가능한 ‘현수’가 만들어진 것이다. 남편의 외도로 깨져 버린 부부 사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형사 경력. 영화 속 현수의 위기는 30여년간 톱스타 자리를 지켜왔던 배우의 고통과 일맥상통하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매번 작품을 끝낼 때마다 좌절하며 은퇴를 생각한다고 했다. “이 일을 해내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알기 때문에 늘 두려워요. 두려움이 없는 촬영 현장은 없어요. 처음 연기하는 배우도, 10년 한 배우도, 100년 한 배우도 그럴 거에요. 촬영 현장이 즐겁다는 배우도 있지만 저는 하나도 즐겁지 않아요. 현장에서 좋은 사람 만나는, 그런 즐거움이야 있죠. 하지만 작품 그 자체로는 코미디 작품조차도 즐겁기보다는 두렵고 힘들어요. 어떻게든 즐기는 태도로 희석시키며 하는 거죠.”
김혜수는 16살이던 1986년 데뷔했다. “연기라는 일의 본질에 접근하기 전부터 어른들의 세계에서 살다가” 20대를 맞이했다. 성인 연기자로서 “끊임없이 벽에 부딪히고 한계를 인정하며” 30대에 이르렀다. 30대엔 연기 안팎으로 여러 시도를 했고, 40대에 접어들면서 “이제 전부 다 그만두고 내 삶을 살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40대가 시작되자 “내 삶과 배우로서 삶을 분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배우의 삶은 그렇게 이어졌다. ‘밀양’의 전도연을 보며 좌절하고 은퇴를 생각하다, 새로운 시나리오에 흥미를 느끼며 촬영장으로 다시 빨려들어가는 식이었다.
‘내가 죽던 날’은 미스터리 스릴러로 시작하지만, 현수와 세진, 그리고 섬에서 세진을 돌봐주던 순천댁(이정은)이 무언의 공감과 연대를 맺으며 마무리된다. 세진, 순천댁이 현수를 살아나게 하듯, 김혜수도 그렇게 살아났다.
“여기까지 온 게 저 혼자 힘은 아니죠. 지금까지 줄곧 복잡하고 모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지금도 그래요. 늘 운이 좋았죠. 구세주 같은 사람이 늘 있었어요. 저보다 좋은 배우는 엄청 많잖아요. 그럼에도 제가 계속 연기할 수 있었던 건 그래서죠. 제가 뭔가 특별하고 용기있는 사람이라 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 또한 늘 두렵고 내게 주어진 몫을 버거워하면서도 어떻게든 하려 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작은 것에 기뻐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자기처럼, 관객도 위로받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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