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사건 70년, 유족·참전미군 유족 특별한 만남
"과거 벗어나 인권·평화 발전시켜야" 공감·화해

양해찬(왼쪽) 노근리사건 희생자유족회장과 한국전쟁 참전 미군 유족인 조르자 레이번씨가 10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평화공원에서 만났다. 전쟁의 상처를 공유한 두 사람은 "아픈 역사를 교훈삼아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세계인에게 알리는 데 여생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한덕동 기자
“미군도 전쟁이 낳은 피해자입니다. 이제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 가족의 아픔도 보듬어야지요”
10일 오후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노근리평화공원 내 교육관. 양해찬(80) 노근리 사건 희생자유족회장은 한국전쟁 참전 미군 유족인 조르자 레이번(72)씨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 같이 되뇌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레이번씨는 “여러분이 겪은 고통과 슬픔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전 세계인이 노근리 사람들을 잊어선 안 된다”고 위로했다. 그의 상의에는 ‘‘In Memory(추모)’라고 적은 리본이 달려 있다.
레이번씨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당시 경북 왜관 낙동강 전투에서 실종된 제임스 호머 엘리엇 육군 중위(실종 당시 29세)다. 홀로 남아 60여년 남편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지난해 숨을 거뒀다. 어머니의 유골은 유언에 따라 아버지가 있을 낙동강 변에 뿌렸다.
양 회장은 사건 당시 피난길에 올랐다가 미군 폭격으로 할머니와 형, 동생을 잃었다. 자신도 왼쪽 다리 총상을 입었다.
이날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가슴으로 화해했다. “아버님의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양회장의 인사말에 레이번씨는 “70년간의 한을 벗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답했다.
이들의 만남은 노근리사건 70주년을 기념하는 노근리 글로벌평화포럼 행사의 하나로 마련됐다. 한국전쟁 당사자인 피란민 희생자와 미군 유족이 노근리 현장에서 만나 화해하자는 취지의 행사다.
이 자리에선 노근리 사건 당시 할머니를 잃은 정이주(43)씨와 흥남철수 때 피란민 10만명을 구출하는데 기여한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손자인 네드 포니(57)씨의 만남도 성사됐다.
참석자들은 “후대에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것이 노근리 사람들을 영원히 기억하는 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에서 작가로 활동중인 포니씨는 “노근리 사건은 절대로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건의 실상과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요성을 후세에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한국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이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평화의 소중함을 전파하기 위해 양국의 후손들이 연대를 강화하자”고 화답했다.
양해찬 유족회장은 “비 온 뒤 땅이 더 굳듯, 아픔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이 존재한다. 희생된 미군들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10일 노근리사건 70주년 기념 노근리 글로벌평화포럼의 '특별한 만남'행사에 참가한 노근리 사건 유족과 참전 미군 유족들이 노근리평화공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덕동 기자
앞서 레이번씨 등 미군 참전용사 유족들은 이날 오전 노근리사건 현장인 쌍굴다리를 돌아보고 위령탑을 찾아 참배했다.
10~12일 3일간 열리는 노근리 글로벌평화포럼에선 평화를 위한 토론과 학술행사가 온ㆍ오프라인으로 진행된다. 한국전 참전용사였던 세계적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이 온라인 콘서트로 동참한다. 노근리 사건을 세계에 알린 AP통신 찰스 헨리 전 기자, 독일방송 마크 비제 프로듀서 등 인권·평화 신장에 앞장선 언론인들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배우 정우성, ‘재심전문’ 박준영 변호사 등 역대 노근리 평화상 수상자들도 평화 심포지엄에 영상으로 참여한다.
행사를 주관하는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정구도 이사장은 “노근리 사건은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며 “이번 평화포럼이 전쟁의 참혹성과 아픔을 넘어 치유와 화해, 미래를 향하는 소중한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북한군 공격에 밀려 후퇴하던 미군이 전투기와 기관총으로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쌍굴다리에 있던 피란민들을 공격해 200여명의 사상자를 낸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영동군은 사건 현장 부근에 위령탑, 평화기념관, 교육시설 등을 갖춘 노근리평화공원을 2011년 건립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